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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끊어진 물줄기 본문

내생각들

끊어진 물줄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4. 14:39

끊어진 물줄기

요즘 우리 집은 아주 큰 곤경을 치르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아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있는 입장이다. 힘들어하는 이유는 본가로 들어오며 세를 주었던 빌라의 두 층 아래 사는 남자가 억지를 부리는 통에 서로 간의 의견이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그 집의 사정이 딱해 보이는 것이, 거실이 온통 천정에서 흘러내린 하수로 인해 강을 이루고 벽지와 장판까지 젖어 있어 누가 봐도 힘든 상황임을 알 수 있겠다.

하지만 안 돼 보이는 것은 안 돼 보이는 것일 뿐이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는 지하층에 사는 남자가 천정이 새고 욕실이 새는 원인이 1층이 아닌 2층의 우리 집 욕실 배수관이 잘못되었다고 우기면서 빨리 공사를 해 달라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지하의 천정이 새는 것을 어떤 연유로 바로 위층이 아닌 2층에 책임을 전가시키는지, 2층의 우리 집이 문제라면 당연히 1층의 천정부터 흥건히 괴어 바닥을 적시고 지하층의 천정으로 흘러 내려가 강을 이루어야 마땅하거늘 물길이 1층 천장과 바닥을 감쪽 같이 통과하여 그 집만 적시게 되었는지 도통 그 영문을 모르겠으니 여하간 지하층 남자의 말로 안 되는 억지로 판단되어 아내에게 대거리도 말라하였다.

우리 집에 세든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1층과 지하층 간에는 몇 달간의 실랑이가 있었던 모양이고 1층의 주인이 자기네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딱 잡아떼는 바람에 그 화살을 이층 집의 우리에게로 조준한 듯하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해 마음 착한 아내가 그 집의 몰골을 보고 박애주의가 도져 고개를 끄덕인 게 꼬투리를 잡혀, 빈 낚시에 월척이 잡힌 것으로 간주한 지하층 남자가 옳다 하며 물고 늘어지는 통에 나 모르게 아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문제를 제기 한 시점이 아내가 한참 신경 쓰는 일이 있어 골머리를 앓으며 짬을 내기 힘든 시기였는데 그런 아내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질을 해 대면서 당연히 우리 집의 배수구가 문제가 있으니 공사를 해야 한다느니, 업자를 자기가 부르겠다느니, 우리 집 문제가 없으면 자기가 공사비를 다 내겠다느니, 시시콜콜 언제 공사할 것이며, 왜 시기를 늦추느냐, 오만 신경과 겁박을 해 대는 통에 처음부터 이 일을 맡아 나선 아내의 얼굴에 근심이 차 오르고, 내게 상의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내 마음도 갑갑해져, 의도하지 않은 아내와의 신경전도 벌이며 투덕대기까지 하였다.

결국 설비일을 업으로 하는 친구 수길이를 불러 원인을 진단토록 하였더니 어이없게도 빌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배수관이 문제가 있다고 진단을 하였는데, 진단 결과를 알고 난 순간 제대로 된 진단조차 안 받고서 알량한 자신의 상식만 믿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 지하층 남자의 대갈통을 두들겨 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이 더 문제가 되었다. 진단 결과를 지하층 남자가 수긍하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며, 수긍을 하더라도 공사 과정이 문제 될 것이다. 아파트 같으면 관리소에서 해결해 줄 것이고, 단독주택 같으면 당연히 집주인이 수리하면 될 터인데 우리 빌라 같은 경우 공동기금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소유지분만큼 수리비를 갹출하고 공동 업자 선정에서부터 공사대금까지 각 층 주인들의 마음이 맞아야 편할 텐데, 이번 일을 겪으며 위아래층에 사는 이들의 면면을 보니 참으로 한숨부터 나오면서 이 일을 어쩔까 싶다.

이제라도 원인이 나왔으니 억지만 쓰던 사람들은 납득할 해명을 하면 수긍할 것이라 별 문제는 없을 것이며 우리로서야 경비는 공동부담으로 생각하고 수리비만 내어 놓으면 되겠지만 우리 집 문제가 아니면 자기가 다 책임을 진다고 큰소리치던 지하층 남자는 장마철에 눅눅한 장판과 천장에 흐르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그악하니 구구절절 따지고 드는 위층 사람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공사비를 거출해서 공사감독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물은 아래로 흐르며 물줄기를 이루어 강과 바다로 흐름이 당연하듯 이웃간의 정(情)도 물줄기처럼 마음을 이어가며 구순하니 살다 보면 오늘과 같이 중간에 끊어진 물줄기를 바라보며 허탈해하는 어려움이 없을 텐데 이즈음의 사람들은 물줄기 흐르듯 서로 이어가는 세상살이의 이치를 망각하며 자신들의 편의와 주장만을 내세우는지, 이제라도 세상 사람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나부터 구순한 심성으로 매만지며 살아야겠다..

2011 - 7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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