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제물포역 광장에서 마주친 그의 잔잔한 걸음걸이에서는 변함없는 당신의 기품이 묻어 나온다. 한 줄기 서늘한 골 바람에 하늘거리는 흰 머리카락에서 묻어 나는 살아온 세월의 향기가 아름답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높거나 낮지도 않은 부드러운 억양에 흐르는 삶의 지혜를 담은 그 소리가 낭랑하다.
조금은 굽은듯한 조그만 등에 얹혀있는 멜가방에서 울려 나오는 달그락거리는 필통 소리에서 친근함과 근면함이 배어 나온다. 조그만 수첩 그득 적어놓은 일상의 배움의 자취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강화도 섬사람인 그의 이마에 깊게 파인 골짜기에서 선선한 바다내음이 쏴~하니 풍겨온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슬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에게서 못 느껴보던 시원함이다.
한 잔 술에 담은 그의 아름다운 싯귀가 나를 행복한 도원경으로 이끌며 무아지경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고래로 드문 나이에 세월의 빈 그물로 채운 지혜의 깊은 뜻을 어찌 표[表]할 수 있을까!
그는 사회생활 초년기에 세상의 이치와 올바른 공복의 자세를 일깨워 주시던 사회의 선배이자 스승이었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함께 흰 머리를 맞대며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즐거움을 주고받는 형이자 친구가 되었다.
따뜻한 가슴에 배신의 못을 박은 자들을 조용히 용서하며 떠나 보낸 넓은 마음과, 험난한 삶의 굴곡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후배들에게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여주던 그 고고한 마음을 누가 혜량[惠諒]할까!
공자 《논어(論語》의 "안연"편을 보면.... 제나라 "경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하고 물었을 때... 공자께서는... "군군신신부부 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모든 이의 다움이 다울 때 순리가 펼쳐진다는 답을 풀이하며 관계에 대한 깊은 조언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모자라지도 않게 넘치지도 않게 그 만의 삶을 그의 방식으로 그답게 살아온 멋진 분이다. 내 인생의 한 정거장에서 홀연히 올라타 함께 가자더니, 어느 날 도인처럼 사라져 황망함을 주던 분이었다.
이제 인생의 굽이를 돌고 돌아 다시 내 앞에 나타나 그윽한 향내 풍기면서 함께 가자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갈지도 모른 채 향기에 반해 그 손을 잡았다. 온 몸에 아늑한 취기가 퍼지며, 세상이 밝아온다. 차~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