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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John Coltrane-Ballads 본문
한 잔의 진한커피와 함께
John Coltrane-Ballads
소니 롤린스보다는 비교적 늦게 세상에 알려진 콜트레인의 연주는 50년대
마일즈 데이비스의 캄보 악단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57~58년 사이 발매된 앨범 'Coltrane', 'Lush Life', 'Blue Trane', 'Soultrane'등에서
수많은 명연을 남기게 되는데요, 이 시점에서 콜트레인은 마일즈와 함께
재즈사에 큰 영향을 미친 셀로니어스 몽크와의 만남으로 인해 그의 테크닉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전체적인 음악관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구심점을 만들게 됩니다..
에릭 돌피를 비롯한 비밥의 거성들이 거쳐간 클럽 '파이브 스팟'에서의 이 두 거장들의
만남은 훗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장편 '상실의 시대'에서 콜트레인을 언급하기를
60년대 세계 젊은이들을 재즈의 허무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극찬을 남기게 됩니다..
소니 롤린스와 비교해 더욱 테크닉이 뛰어나고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연주에 강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이 앨범은 그런 테크닉보다는 테너 색소폰의
감성적인 부분에 촛점을 두고 소개를 해드립니다..
앨범전곡감상
1. Say It (Over and Over Again)
2. You Don't Know What Love Is
3. Too Young to Go Steady
4. All or Nothing at All
5. I Wish I Knew
6. What's New?
7. It's Easy to Remember
8. Nancy (With the Laughing Face)
▶▶▶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존 윌리엄스 콜트래인은 1926년 9월 23일 미국 노스 캐롤나이나 햄릿에서 양복점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처음 배운 악기는 클라리넷이었고, 그 다음이 알토 색소폰이었다. 콜트래인은 일생동안 여러 뮤지션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 셀로니어스 몽크 그리고 에릭 돌피 등의 아래서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 하면서 언제나 이 위대한 인물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웠던 것이다.
사실 콜트래인이 재즈계의 제 1 선에 등장한 것은 1955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룹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이시기부터 콜트래인이 1967년에 간암으로 사망하기까지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12년에 불과하다. 여기서 잠깐 재즈맨으로서 콜트래인의 일생을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보자. 제 1 기로 발전 도상기, 제 2 기로 질주기, 제 3 기로 분노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 1 기의 콜트래인은 군대시절 군악대에서 활동하다 제대후 프로로 데뷔한다. 데뷔 동기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의 설명도 없고 알려진 바도 없다. 연주에 있어서 프로 데뷔를 의심할 정도로 장점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프로로 데뷔한 후를 1 기로 잡고 있으며 이때 디지 길레스피 밴드에서 알토 색소폰을 연주했으나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 시기의 콜트래인 음반은 몇 장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다.
당시 앨범의 대표격으로 " Trane's First Ride(1951)" (디지 길레스피 6중주단)가 남아있다. 흥미가 있는 사람은 이 시기의 대표음반이므로 한번 들어 보길 권한다. 콜트래인의 제 2 기는 재즈 역사상 그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 5중주단에 소니 롤린스 대신에 발탁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는데, 이미 확고한 자신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또 어느정도 명성도 있었던 소니 롤린스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 참가하길 거절하면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콜트래인은 거의 무명에 가까웠으므로 그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 참가한 것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
음악팬들은 콜트래인 하면 "Sheets of Sound" (후에 재즈 평론가 아이라 기틀러에 의해 이름 붙여진 것이지만) 즉 끊임없는 프레이징을 연상한다."Sheets of Sound"란 음악적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음표를 세분화 시킨 것이다. 즉 이 시도는 콜트래인의 공백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음의 사이사이에 다른 음을 집어 넣는 것으로 계속 연결된다고 느껴지는 소리와 소리 사이를 다시 세분화 하여 반음 올리거나 내린 소리로 공간을 메우는 작업이었다.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콜트래인은 발라드에도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또 상당한 실력도 있었다.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1955년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의 인기는 마일스의 발라드 연주에 기인한다. 그런데 당시 레코딩을 살펴보면 마일스의 특기라 할 발라드 연주에는 콜트래인이 솔로 파트로는 한번도 참가하지 못했던 점이 눈에 뛴다. 당시의 비디오 자료를 보더라도 레코딩 스튜디오 한구석에서 연주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는 콜트래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마일스의 발라드 연주법을 집중해 듣고 연주하여 마일스의 발라드 연주법을 배웠다.
이 시기의 발라드 연주 덕분에 후일 명연주를 많이 남기게 되었다. 콜트래인의 발라드는 레스터 영의 논 비브라토 주법이면서도 더 굵은 사운드라는 점이 특징이다. 콜트래인 발라드의 아름다움의 정체는 절제된 표현에서 온다. 연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표만으로 연주하며 장식음이나 과장된 감정 표현이 드물다. 그러면서도 무미건조하거나 모자라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이 절제된 사운드가 더 많은 소리를 내포하고 있다. 콜트래인 발라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리리시즘'이 아닐까 한다. 다소 냉정하면서도 굵직하고, 윤곽이 뚜렸하여 흡사 음가운데 뼈라도 들어 있는 듯한 탄탄함을 느끼게하는 그의 리리시즘은 본인의 천부적인 재질도 있겠지만 마일스의 발라드 연주법에서 따온 것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후일 콜트래인은 솔로 앨범으로 "Ballads"를 발매했는데 당시에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콜트래인의 발라드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권한다. 마일스에게서 배운 그의 발라드 기법이 돋보이는 앨범이며 콜트래인을 이해하고 배우는데 있어 그의 발라드 연주는 색소폰 연주자들의 교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Sheets of Sound"의 확립으로 그는 재즈계의 거인이 되었다. 그의 음악적인 성장은 앨범을 한장 한장 발표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1965년 6월 28일 콜트래인은 "Ascension"을 녹음했다. 그의 조용한 천성, 그의 쿼텟, 그의 발라드, 그의 성공이 가져다준 완벽한 환경을 송두리째 버리고 그는 프리재즈라는 전장에 몸을 던졌다.이 시기를 기점으로 3 기인 분노기에 접어들게 된다. 콜트래인은 자신에게 남겨진 인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하루가 다르게 음악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발전의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는 재즈 연주에 있어 항상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고 연구를 계속했으며 실험을 거듭했다.
그의 그런 행동으로 미루어 프리재즈에의 귀결은 너무나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원래 프리재즈라고 하면 재즈의 핵이 되는 임프로바이제이션을 무한대로 확대하기 위해 코드와 멜로디를 파괴시키는 것을 뜻한다. 콜트래인이 "Ascension"을 발표하기 5년쯤전에 돌연 오넷 콜맨이 "Free Jazz"라는 앨범을 내면서 음악세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후 프리재즈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게 되었다.콜트래인이 프리재즈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접근한 것은 에릭 돌피와 만나게 되면서 부터로 이것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Ascension" 앨범이다.
이와 같은 프리재즈가 호황을 누렸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Ascension" 앨범이 발표되었다. 콜트래인은 이 음반을 발표할 당시 세계 재즈 팬들로 부터 호된 비난과 질책을 당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답도 주지 못한채로 1967년 "expression!" 앨범을 마지막으로 7월 17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존 콜트래인, 그는 과연 궁극적으로 어디에 닿고자 했던 것일까? 지금와서는 그 의문을 풀 길이 없다.콜트래인 사후 지금도 콜트래인을 뛰어넘는 수준의 천재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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