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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진짜'가 되는 길 본문

철학,배움,지혜

'진짜'가 되는 길

김현관- 그루터기 2023. 7. 12. 00:36

'진짜'가 되는 길

내가 좋아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중에는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꼭 이 기도문이 아니더라도 이 말은 어렸을 때부터 주위 어른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고, 이제는 내가 어른이 되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을 받기보다는 주는 사람이 되라. 그리고 이왕 주는 사랑이라면 타산적이고 쩨쩨하지 않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라."

나 자신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쭙잖지만, 그래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말이다.

사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문학의 궁극적인 주제도 결국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착되니, 내 삶의 주제는 단연'사랑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나는 가끔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시큰둥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그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오만해진다면 그 사랑은 참으로 슬프고 낭비적인 사랑이다.

사랑하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항상 배려하는 마음,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항상 의식의 언저리에 있는 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은 대단한 영혼의 에너지를 요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작 차 한두 대 굴리는 석유나 석탄 같은, 눈에 보이는 에너지는 아까워하면서, 막상 이 우주를 움직이는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그저 무심히 흘려보내기 일쑤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동화 중에 벨벳 토끼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아이가 갖고 있는 장난감 말과 토끼가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진짜 토끼'가 되고 싶어. 진짜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잠자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새로 들어온 장난감 토끼가 아이의 오랜 친구인 말 인형에게 물었다.

"진짜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건 그냥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야."

말 인형이 대답했다.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아파야 해?"

다시 토끼가 물었다.

"때로는 그래. 하지만 진짜 아픈 걸 두려워 하지 않아."

진짜가 되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야? 아니면 태엽 감듯이 조금씩 조금씩 생기는 일이야?"

"그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야."

"그럼 진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아이가 진정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 놀고, 너를 오래 간직하면,

즉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 너는 진짜가 되지."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깨어지기 쉽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갖고 있고, 또는 너무 비싸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장난감은 진짜가 될 수 없어. 진짜가 될 즈음에는 대부분 털은 다 빠져 버리고 눈도 없어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아주 남루해 보이지. 하지만 그건 문제 되지 않아. 왜냐하면 진짜는 항상 아름다운 거니까."

장난감이 아이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닳고 닳아야 비로소 생김새는 초라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닌 '진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진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일이다. 잘 깨어지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갖고 있으며, 또 너무 비싸서 장식장 속에 모셔 두어야 하는 장난감은 위험하고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이가 사랑하지 않게 되고 '진짜'가 될 기회를 잃게 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모난 마음은 동그랗게 ('사람'이라는 단어의 받침인 날카로운 ㅁ을 ㅇ으로 바꾸면 '사랑'이 되듯이), 잘 깨지는 마음은 부드럽게. 너무 비싸서 오만한 마음은 겸손하게 누그러뜨릴 때에야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는 사랑받는 만큼 의연해질 줄 알고, 사랑받는 만큼 성숙해질 줄 알며, 사랑받는 만큼 사랑할 줄 안다. '진짜'는 아파도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으며, 살아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간판을 이마에 달고 다니는 나도 아직 제대로 사랑을 받을 줄 모른다. 걸핏하면 모서리 날카로운 네모가 되고, 걸핏하면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는 듯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니까' 하는 거만한 마음을 갖고, 또 걸핏하면 내가 거저 받는 그 많은 사랑들도 적다고 투정한다.

한번 생겨나는 사랑은 영원한 자리를 갖고 있다는데, 이 가을에 내마음속에 들어올 사랑을 위해 동그랗게 빈자리 하나 마련해 본다.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할 줄 아는 '진짜' 됨을 위하여.

 

#장영희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짜'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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