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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백수의 횡재소비라 하면~ 본문
횡재(橫財)
만약에 백만금이 생긴다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홍보다. 슬근슬근 쓱싹 툭탁하고 박을 타니 순금궤 하나에 금거북 자물쇠가 채워 있었다. 흥부 꿇어앉아 열고 보니 황금·백금·오금·호박·산호·진주 사향·용뇌... 가 쏟아져 나온다. 고대광실 월계수로 기둥 삼고 은판지로 지붕하고 금판지로 마루를 깐다. 일자무식이면서 서실에는 『사서삼경』 『고문진보』 『자치통감』 『대학』 『소학』 등속의 책이 마냥 쌓인 고 흥부는 금실은실 교직이불속에서 양귀비첩과 해가 중천이 되도록 시시덕거린다. 횡재를 둔 가장 때 묻지 않고 솔직한 서민의 소망을 흥부가 여실히 대행해 주고 있다. 하지만 횡재가 그렇게 쓰이지만은 않았다.
만약에 백만은(百萬銀)이 생긴다면 당(唐)시인 두보는 그 은을 방아로 매 찧어서 곱게곱게 가루 내어 눈처럼 천지에 뿌려놓고 그 위를 정처 없는 나그네가 되어 해진 가죽신발 자국을 남기며 무한히 걷고 싶다 했다. 시적인 횡재소비다.
청나라 초기의 해학적인 학자 김성탄(金聖嘆)은 만약에 백만금이 생긴다면 99만9,999금으로 같은 고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차용증서를 샅샅이 사들여 불태운다. 나머지 일금으로 탁주를 사서 지나가는 초라한 서생 하나 붙들어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라지는 연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아니 즐거운가..했다.
한말의 고승 만공스님은 만약에 100만 원을 준다 해도 이를 깨끗이 불에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셔 버리겠다고 했다. 일제 초 총독부에서는 기골이 왕성한 이 스님을 매수하려고 공작을 쓴다 했을 때 한 말이다. 이것은 선적(禪的)인 횡재소비다.
선조 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繭) 선생은 서해의 무인도에 박을 대량으로 심어 수만금의 횡재를 했다. 그 횡재로 토정 선생은 전쟁 후 떠돌아다니는 그 많은 유랑민을 한데 모아 집단이상촌을 만들고 있다. 수만 명을 살리고 자신은 지금 마포대교가 있는 개울가에 흙 집-토정을 짓고 살았다.
효종 때 서울 남산 아래 살았던 허생도 매점매석으로 횡재한 은 백만으로 무인공도(無人空島)를 개척, 호남지방에 횡행하고 있는 군도들을 정착시키고 있다. 복지에 쓸 대로 쓰고도 50 만금이 남자 바다에다 버려버리고는 누더기옷에 조밥을 먹고 산다.
백만금의 횡재를 아예 취하지 않은 어머니도 있었다. 영조 때 청백리 김수팽 형제는 과부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어느 날 어머니가 텃밭에서 일하는데 호미 끝에 와닿는 쇳소리를 들었다. 큰솔이 묻혀 있었는데 열어보니 금은보화가 가득하였다. 이때 김수팽의 어머니는 그 백만금을 다시 묻어두고 이사를 해버렸다. “재(財)는 재(災)인지라 무고히 큰 재물을 얻으면 자식들이 의식이 안일해져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가난하게 자라지 않고는 재물이 들고 복이 드는 재미를 어떻게 알리오"하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렇게 보면 횡재(橫財)는 횡재(横災)인 것이다.
(86-12-16) - 김규태 코너 /1985-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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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태 선생의 사설집을 보고 있는 지금의 내 책상속에는 로또 한 장이 다소곳 자리잡고 있다. 만약 당첨이 된다면 어찌 쓸까를 늘 궁리하고 있는데
# 두보와 같은 횡재소비를 하는 승천할 기가 없으니 일단 거두고,
# 김성탄 같은이와 같은 선을 나누는 미덕이 부족하니 턱도 없고,
# 만공스님과 같은 선적인 횡재소비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며,
# 토정 선생과 같은 이상촌을 만드는 위인도 못되니 이도 차치하고,
# 허생 선생과 같은 호탕한 의(義)도 없으니 이마저 거두는 데
# 김수팽형제의 어머니처럼 횡재(橫財)는 횡재(横災)로 보는 의지도 없으니
당연 서민 씀씀이의 본이 될 흥보를 따르겠으나 그마저도 아내의 짱짱한 눈사위를 견디지 못할것이라.. 그저 조곰만 나누어 친구들과 몸보신하고 여흥이나 즐기는 것으로 끝날 듯하나. 그게 제일 속 편한 재물소비가 되겠으니 가장 현명한 횡재의 백수다운 소비가 되겠다. 자~ 그럼 일단 횡재수나 한 번 터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꿈이나 꿔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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