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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내 기억의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는 신흥동 뒷골목 풍경 본문

내이야기

내 기억의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는 신흥동 뒷골목 풍경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4. 19:24

내 기억의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는 신흥동 뒷골목 풍경

아내는 세일이 한창인 저녁 무렵 인천여상' 앞의 대형마트를 애용한다. 덕분에 백수처지인 나는 종종 짐꾼으로 차출되어 코뚜레에 꿰인 소처럼 카트를 끌고 마트 안을 배회하는 일이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각자 볼일을 보고 마트에서 만나기로 하여 시간에 맞춰 포터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러 마트로 향하였는데, 문득 신흥동 시절의 애틋함이 그리워 잠시 뒷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파트 단지들과 가로변에 오피스텔형 아파트가 겅중겅중 들어서 시야를 가리는 게 일상인 인천의 풍경 변화에 신흥동 역시 그 흐름을 비껴갈 수 없었다. '해광사' 옆동네는 재개발로 인해 완전히 사라져 80년대 초반 이곳에서 생활할 때와 사뭇 달라진 가로변의 모습은 낯설어도 정미소 지역 안쪽의 골목 풍경들은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기우였다. 그나마 당시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신동양'을 비롯한 몇몇 건물들을 보면서 새삼 세월의 흐름과 대한민국의 살벌한 변화의 역동성을 느껴 볼 수 있었다.

신흥 로터리 쪽에서 골목으로 들어서자 신흥 부대고깃집이 보인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신흥 부대고기' 주인 내외의 선한 인상은 아직도 그대로이지만 이제는 연로하여 가게를 아들 내외에 물려주고 간간 손을 돕고 계시는 중이다. 부대 고깃집 뒤편으로 '처녀 목욕탕' 굴뚝이 보인다. 송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던 '처녀 목욕탕'! 이름이 참 독특했다. 지금은 목욕탕 굴뚝만 남아 오래 전의 추억을 곱씹으며 쓸쓸히 바래가고 있다. 옛 추억을 그리며 서있는 '신흥 한증막' 맞은편의  낡은 일식이층 집도 보수공사를 하여 옛 모습이 사라졌는데  '신흥1동 사무소'의 옛 건물도 사라지고 지금은 주차장이 되었다.

골목길 중간쯤 왼편 좁은 골목에는  총각시절 한참 드나들던 뉴 반도 나이트클럽에서 나이 든 아저씨 아줌마들의 만남의 광장이 되었던 '신흥 카바레'가 이제는 옛 영화를 뒤로하고 쇠락한 창고의 기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골목은 지대가 낮고 바다와 맞닿았던 곳이라 장마철 사리를 만나게 되면 온통 물 천지가 되었는데 이제는 흘러간 옛이야기로도 기억을 할 수 없겠다.

당시에 신흥동에는 중국 요릿집 자웅을 겨루며 맛을 뽐내고 있었다. 세 곳 모두 화교들이 운영하여 차이나타운이 번성하기 전까지 꽤 유명세를 타던 곳이었는데 '혜빈 반점' '세계 극장'부터 배다리 간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철거되었으나 두 곳은 아직도 제자리에서 영업하며 그 맛을 유지하고 있다. '이마트' 방향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삼거리 모퉁이에  조그만 방앗간이 있었고, 그 집에서 운영하는 간판 없는 냉면가게가 있었는데, 닭고기 육수를 내어 만들어 낸  냉면은 맛이 너무 좋아 단골 식도락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항상 만원사례였다 꼭 여름 한철만 하는 희소성까지 겹쳐 나도 한동안 먹으러 다녔으나 이제는 없어졌는데. 하도 맛깔스러워 냉면 만드는 법좀 가르쳐 달랬더니 "예끼 이놈아" 하시던 주인 할머니가 그려진다.

'삼익아파트' 앞 일대의 창고 건물과 정미소의 붉으죽죽한 적벽돌 담장들의 모습이 흉물스러워 '고려 정미소'부터 지금의 '이마트' 자리의 '삼화 정미소' '선경 창고'를 지나 '국일관' 맞은편'상공회의소'까지의 담장에 동네 아저씨들과'담쟁이덩굴'을 심었다. 세월이 가며 그곳을 지날 때마다 쭉 이어진 담장과 창고 건물을 뒤덮은 초록색 잎의 운치 있고 시원한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아파트와 '이마트' 등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며 하나 둘 없어지더니 끝까지 남아 있던 창고까지 모두 철거하고 이제는 담쟁이덩굴 잎의 나풀거림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부터 2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신흥동인데도 매양 그리움만 간직하며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셔서 아는 분들은 이제 거의 없어 그런가 보다. 흘러간 세월에  겉모습은 별로  바뀌지 않았어도, 사람들이 떠나간 그곳은 내가 알고 사랑하며 숨 쉬던 예전의 신흥동이 아닌 추억만 남은 낯 선 곳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가슴이 아리다. 옛날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인데, 아직도 스스로를 청춘으로 알고 있는데, 감성이 저만치 앞서 나이를 따돌리며  심장의 열기를 뺏어 가나보다. 짧은 시간 신흥동의 옛 골목길을 걸으며  만국기를 펄럭이며 함께 운동회를 하던 예전의 신흥동으로 뭉근하니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인천은 지금 너무도 빠른 변화에 맞닥뜨려 있다. 90년대  '주거환경개선사업' 으로부터 시작되어 그나마 남아있던 운치 있는 주택들의 정원들을 들어내고, 성냥갑 같은 빌라 천지로 만들더니 , 이젠 그 빌라들마저 재개발과 재정비 사업 등으로 철거해 버리며 온통 아파트를 지어놓아, 하늘 구경하기가 힘들다. 별을 보며 낭만을 얘기하는 건 애초에 글러 먹었다.

그 통에 남겨 두어야 할 건물도 헐리고, 개개인들의 추억을 가진 무수한 집들이 사라지면서 어릴 적 뛰 놀던 동네와 골목길이 송두리 채 없어져 내가 살던 곳이 어디였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편리함과 쾌적함의 추구가 추억과 인성을 앗아버린다. 삶이 팍팍해져 가고 정이  메말라감을 느낀다. 먹고 자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닐터인데,정신의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텐데, 세상살이 점점 힘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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