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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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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가는 말이 고우면 날 우습게 본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8. 19:59

가는 말이 고우면 날 우습게 본다

얼마 전 라디오의 음악프로를 듣고 있는 중에 진행자가 언뜻 이상한 속담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가 아닌 "강남에서 용 난다"라는 변형된 속담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가 아닌 "가는 말이 고우면 날 우습게 본다"라는 심히 곡해된 속담들이 요즈음 유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강남 특목고 출신들이 명문대 입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지난 10년간 법복을 입은 신인 판사 10명 중 4명이라는 통계수치가 그를 반증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의 속성이 교육에 깊숙하게 파고들어 "부잣집에서 판사가 난다"라고 하는 신종 속담까지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 세대는 속담도 저렇듯 변형시켜 시대를 반영하는구나 하며 씁쓸한 생각을 지니고 있던 차에 나 역시 새로운 속담의 하나인 "가는 말이 고우면 날 우습게 본다"라는 속담이 남의 얘기만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자그만 사건을 겪게 되었다.

바로 오늘! 박 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한 지 꼭 30년 하고도 하루가 되는 오늘의 일이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푹 쉬고 있던 차에 아이들이 학교를 간다며 북새통을 이루더니 이내 잠잠하다. 아이들 방에서 컴퓨터를 켜 놓고, 잠시 오늘 밖에서 있던 일들을 아내와 얘기하고 있는 중에 큰 애가 잔망스럽게 전화를 해서는 교통사고가 났다고 아내에게 고했다.

집에서 큰길로 나가는 중에 잠시 대기하고 있던 큰 애의 차에 자전거를 타던 중학생 하나가 딴청을 피우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은 모양이다. 큰 애는 처음 당하는 일이기도 하려니와 학교에서 볼 시험과 지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사건 피해자로서 조치를 미처 취하지 못하고 아이가 안 다친 것만 확인한 후 우선 아이의 엄마 전화번호를 받아두고 부랴부랴 현장을 떠나 전화를 한 모양이라, 그것은 잘못된 처사이니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그 아이에게 차량 번호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현장의 사진을 찍어 놓으라 하고, 목격자가 있는가 물었더니 다행스럽게도 모퉁이의 어물전 아저씨가 목격하였다고 알려주길래 그럼 되었다 하고 보험회사와 경찰관서에 신고를 하라 일렀다. 큰 애는 내 말을 듣고서 그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려 하였더니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던 아이가 그냥 도망을 쳐버려 어쩌냐고 묻길래 내가 마저 처리 하마 하고 우선 학교로 가서 시험을 보라 달래어 보냈다..

나 역시 이런 사항은 처음이기도 하여 공연히 큰 애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고 혹시 잘못되어 뺑소니 당사자로 연루되는가 싶어 조바심을 내게 되었다. 사실 큰 애의 말을 빌자면 그 아이가 와서 정지되어 있는 차를 들이받았으니 당연히 자전거 탄 아이가 잘못인 줄 알겠으나, 현장에서 초등으로 치러 내어야 할 행위를 잠시 유기한 큰 애의 행동이 참으로 아쉽고, 사건 확인차 현장으로 온 경찰관의 얘기로는 자전거는 사고 시 보행자의 지위를 부여한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속 뒤집어지는 얘기 아닌가~

나중 들은 얘기지만 전화를 받은 아이의 엄마는 사건 개요를 차분히 설명한 큰 애를 외려 닦달하고 나섰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목청 큰 사람의 말이 진실이라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세상에 살고 있지를 않은 것이다. 차분하게 설명을 하고 가는 말을 곱게 하는 나만 우습게 보는 정말 우스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경위를 거쳐 아이도 다치질 않고 우리 차만 상처를 조금 입은 것으로 서로 원만히 해결을 보기는 하였지만, 공연스레 피해를 당하고도 차량을 운전했다는 죄 아닌 죄로 잠시 마음고생을 한 큰 애도 작은 일에서 큰 배움을 얻었을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것은 유행처럼 돌아다니는듯한 헛되 보이는 속담이 결국 현재 우리 세태의 정확한 반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배운 하나의 해프닝이다...

2009.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