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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달이 구름위를 날아가던 날 본문

가족이야기

달이 구름위를 날아가던 날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9. 16:22

달이 구름 위를 날아가던 날 

달이 구름 위를 날아간다. 구름은 달 아래서 종종걸음 치고 있다. 달이 잠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 한 몸이 된 듯하더니, 이내 구름이 뱉어내는 형상이다. 새파란 밤하늘에서 달과 뭉게구름의 쫓고 쫓기는 짓거리를 쳐다보느라,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두툼한 점퍼 사이를 헤집어대며 몸을 시리게 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잠시도 함께 어우르지 못하는 품새가 저들도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나와 큰아이로 이어지는 우리 부자지간을 빼다 박은 듯하다.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서 불쑥 꺼낸 큰 아이 녀석이 한 말을 곰곰 생각 중이다.

" 아버지, 학교 그만 다니려고요" 가슴이 덜컹하여 반문한다. " 아니 왜 별안간 그런 말을 하는 게냐? "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대답을 한다. "공부가 안돼요, 그냥 일찍 사회로 나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어서요. 경민이와 여자 친구에게는 상의를 하고 동의를 얻었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이미 자신의 의중은 다 잡아놓고 일방적으로 아비에게 통보하는 모습이 공연스레 밉쌀스럽다.

하지만 어쩌랴, 앞 날의 계획이나 물어 볼밖에. "결정한 바는 있고? " " 자동차 부품 설계 일을 하려고요.." 역시 준비된 답변을 척척 늘어놓는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준비 안 된 상태인 줄 알고 있고 여자 친구의 치맛폭에서 허둥대는 요즘 녀석의 행태가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정말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후회 안 할 자신은 있어?  2 년 전에도 네 결정을 후회하면서 복학하지 않았느냐? "이제 두 번 다시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착하긴 해도 자신의 고집 하나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 그냥 하자는 대로 할 밖에 도리가 없다.
" 음... 그~래.... 머리 다 큰 네 인생 네가 스스로 살겠다는데 아비가 뭐라겠느냐. 다만 앞으로 후회하지 말고 기왕 일을 시작하려면 네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렴"

30여 년 전! 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일을 권하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했고, 이어지는 몇 번의 권유도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의지는 내 의지가 되었고, 그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 내 아들은 나의 뜻을 거스르고 나는 아들에게 내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

아들이야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을 아는지라 오랫동안 생각한 바를 아비에게 통보하였겠지만, 가족이 한 마음 되어 학비에 대한 다소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는 시점에서의 결정이라,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하고 있는 어미의 속상할 마음도 애처롭고, 많은 학생들이 들어가길 원하는 학교를 그만둔다는 부분도 퍽이나 아쉽다.

그간 큰아이에게 제 적성을 살려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세 번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음에도, 그때마다 자신의 길을 가고자 거부를 하였어도 아비 된 마음인지라 그냥 섭섭함만을 가슴에 안고 있었으나, 이제는 아예 학교까지 그만두면서 경제적인 독립 인격체로서의 자격을 통보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르면서도 부자간의 이해관계의 폭을 좁히지 못하고 , 늘 거리감을 두며 인생을 살던 나보다는, 자의적인 선택으로 자신만의 인생의 색을 칠하며 살겠다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속에 있는 자식의 내밀한 흉중까지는 알 수 없음과, 곁에서 보기에도 준비가 안된 태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반 실습 현장에서 그리고, 전방에서 중화기를 들고 있던 늠름한 모습과,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아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온다.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삶의 닻을 올리면서 세상 풍파 속으로 뛰어 들어가려 하는 아들이다. 나와 인생의 궤적을 달리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자 도전하는 아들에게 아비로서 해야 할 일은 뱃머리에 희망과 용기를 새겨 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믿고 싶다.

달이 구름을 따돌리고 혼자 형형히 빛나고 있다. 대보름날! 하얗게 서리 내린듯한 달이 무척 차가워 보인다. 구름은 이미 저 홀로 한참 떨어져 빈 창공에서 스러지고 있다. 벌겋게 동녘이 물들어온다.

20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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