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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성년의 날의 멍한 넋두리 본문
성년의 날의 멍한 넋두리
오늘은 성년의 날입니다. 라디오 음악프로를 즐겨 듣지 않았다면 성년의 날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테지요. 한데 청취자들이 성년의 날이라고 자식들에게 보내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듣자니, 내가 속해 있는 이 세상의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쏟는 정성에 비해 나는 과연 내 아이들의 아비로서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게 되네요.
만 20세가 되는 해의 오늘을 성년의 날로 정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설렁 넘어가기로 하고 90년생인 작은 아들이 성년이 되는 해가 맞는지 혹시나 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하필 오늘이 야근이라 직접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전화를 받은 이 녀석이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 응! 아마 맞을 거야... 그런데 왜? "
성년의 날이 뭐 대수냐는 듯 무덤덤한 대꾸입니다. 개다가 뒷 말이 더 가관입니다. "아빠 ~ 나 지금 밥 먹으려고 "경민이 특제 볶음밥" 만들어야 하니까 그만 끊어요..." 하며 덜커덕 전화를 끊어버리네요. 우리 집 애들은 내가 만든 볶음밥에 "아빠 특제 볶음밥" 자기들이 만드는 볶음밥에는 "석민이, 경민이 특제 볶음밥"이라 이름 붙여서 맛은 별로지만 아주 맛있게 먹어대는 좋은 식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가 직장엘 다니느라 미처 챙겨주지 못할 때 알아서 챙겨 먹는 습관이 들어서죠.
아무튼 작은 아들이 성년이 된 것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조금은 허탈하네요. 내 딴에는 조그만 기념 선물 하나라도 챙겨줄까 마음먹었는데 저리 괘념찮은 행동거지를 접하고 난 뒤 잠시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녀석에게 무얼 선물해 줄까 물어봐야 그저 통닭이나 삼겹살 타령이나 해 댈 것은 뻔할 겁니다. 여태껏 그렇게 길들여졌으니까요. 이게 다 잘 난 아비 덕분에 웬만한 기념일이면 먹는 것으로 때움질하는 습관으로 굳어버린 궁상맞은 우리 집의 현실입니다만 애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 소탈해 그나마 다행입니다.
성년이란, 말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자기의 의사와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다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도 주어지며 법률적으로도 완전한 주체를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성인이 되기 이전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자기만의 영역을 누릴 수 있다는 기분 좋은 단어일 수도 있고요.
"주자가례"에 따른 관혼상제의 첫 번째 의식인 "관례"는 성인식의 원조로써 유교사회 특히 양반가에서 매우 중히 여기고 엄숙히 의식을 치릅니다만, 내 아들들은 그런 뜻을 알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분이 나의 가정교육이 잘 못된 부분입니다. 그래도 꿩 대신 닭이라고 이 글을 아이들이 보면 그럭저럭 의미는 이해할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 스스로 위로하렵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희로애락을 겪어가면서 자신이 개척해 나가야 하는 긴 여정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데다 인생을 몇 마디 말로 가르치기도 힘들거니와 , 게다가 요즘 애들이 한가롭게 부모 얘기들을 듣는 세태도 아니니 그저 두고 보며 원한다면 간혹 한 두 마디 조언이나 해 줄까 합니다... 두서없이 맞은 성년의 날 멍한 넋두리였습니다..
2010 - 05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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