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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3월의 마지막 날 본문
3월의 마지막 날
새벽부터 내린 봄비에 젖은 영종 벌판이 어스름 물들어 간다. 길 가의 나무들과 담장 아래 개나리들이 새로이 움을 틔우며 이 봄을 즐기는데, 열어 놓은 창문가에 비와 흙이 어우러진 정겹고 상쾌한 내음이 흐르고, 내가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 모리스 알버트 "Moris Albert" 의 "Feeling" 이 귓전을 간질인다. 끝까지 앙탈을 부리던 겨울이 그렇게 힘들게 지나갔음을 느낀다.
어제는 아내의 생일이었지만 아내에게 미역국도 못 끓여주고 자주 가던 식당에서 천 원이나 값이 오른 설렁탕을 함께 한 것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아내에게 음식도 차려 주는 이도 있는 모양이던데, 나는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자상하진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산다.
경민이가 훈련소엘 들어 간지가 벌써 내일이면 열흘이 된다. 밖에 있는 가족들이야 별 의미 없이 후딱 지나간 열흘이지만 훈련을 받고 있는 경민이의 입장에서의 열흘은 끔찍이도 오래가는 시간임을 어쩌랴!. 부모 특히 엄마 생각이 그리도 간절할 줄 이제는 느낄 수 있을 터이다.
며칠 새 "천안호" 침몰사건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사건 첫날 서울방송에서 북한의 소행이라 단정 짓는 뉴스를 보고 덜컹했던 마음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비통함이야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군에 자식을 보낸 수 백만 가족들의 심정도 헤아려야지. 자식에 대한 이기적인 마음이 내 생각만은 아니길 바란다.
오늘 절친한 후배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20여 일 전 근무 중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던 후배는 장기간 치료를 해야 한다는 병원 측의 말대로 지속적인 요양을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앞으로 가계를 꾸려 나가려면 꽤 힘들 텐데도 남은 자에 대한 배려로 환하게 웃으며 떠나는 잔잔한 감동을 선물하고 내 곁을 떠나갔다.
큰 아들의 담뱃갑에 담배가 한 개비 밖에 안 남았다. 돈은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직 몇 푼 남아 있단다. 함께 금연을 하자고 다짐했던 작년 내 생일의 약속이 기억에 선명한데 결국 둘 다 금연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간 담배를 끊자 하고 누차 말해 보았지만 아들놈도 마이동풍이고 나는 의지박약이라, 백수인 지금, 물주인 동생마저 훈련소에 가 있는 이 기회에 담배 살 돈을 안 주면 끊어질까 잠시 속으로 마음먹어 보았다. 참으로 아비로서 하지 말아야 할 비열한 생각이라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이런 마음속의 갈등을 저 놈이 나중에라도 알면 좋으련만..
내일은 아버지 제삿날이다. 어머니는 이즈음 매일 동네분들이나 경로당 친구분들과 어울려 약주 드시는 낙에 하루하루를 보내시느라, 내 생일이나 며느리 손주 생일을 아예 기억 못 하며 지내시는데 이제는 아버지 제삿날마저 잊고 계신다. 오늘도 아직 집에 안 들어오셨다. 이제 무엇 하나 걸릴 게 없으신 분이니 남은 여생이나 즐겁게 지내시게 두어야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버지도 어머니 홀로 놔두고 먼저 가신 벌을 받고 계신다 하며 저 세상에서 그냥 껄껄 웃으시고 며느리가 차려드리는 음식들 맛나게 잡수시는 게 속 편하실 게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금세 고모님이 떠 오름은 어쩔 수 없는 두 오누이의 애틋한 사랑의 연결고리 때문이다. 미국으로 떠나신 지 수 십 년 지났건만, 그저 전화와 편지로 안부를 전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하지만 칠순이 지나신 고모님이 컴퓨터를 배우셔서 메일로 수시 연락이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내일 비가 또 온다는데 아버지 찾아뵙는 성묫길에나 비가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할머니와 아내의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에도 가야 하니 내일은 석민이와 둘이서 모처럼 함께하는 긴 나들이길이 되겠다..
2010 - 03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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