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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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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야기

모임이 끝나고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5. 11:50

모임이 끝나고

눈이 이렇게 많이 올 줄 정말 몰랐다. 버스를 타고 다니던 태민이가 오늘은 차를 몰고 제일 먼저 낙지집에 도착했다. 엎어져 코 닿을 곳인 나는 두 번째로 도착했다. 파주에서 오려던 달원이는 일기예보를 듣고 그냥 수원 집으로 간다며 미안하단다.

얘는 녹내장이라 점점 세상을 좁게 본다는데 , 서로 아픔을 공유해야만 될 터인데. 낄낄대는 내 모습을 볼 날도 언제인지 모르는데. 근엄함이 가슴에 갑갑하고, 차분함이 섧다. 학생들의 뿌예지는 모습을 느낄 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내 가슴이 아프고 친구들의 가슴도 아프고. 우리 서로 눈 마주칠 날이 얼마가 될지 모르는데. 달원이의 눈에 뚝 떨어지는 그 아픔이 얼마나 우리들의 가슴에 와닿을까! 얘야~ 너와 나는 지금 함께 보는 세상의 바른 빛도 그저 편안히 보는 그늘도 함께 본지 얼마 안 되는데 서서히 감아 갈 수 있다는 그 눈빛이 너무 아프구나.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는 네가 늘 그려질 거야...

승희야, 하필 중국 출장을 갈게 뭐냐? 너한테 진짜 할 말이 많았는데. 피아골의 정념도 그립고, 숭의동 네 아버지 합판 가게도 그립고 2014년 아시안 게임의 경기장이 너를 떠나보냄도 아쉽다. 그래도 너는 도원 철교 주변에서 함께 청춘을 나누던 친구라서 애틋하구나. 멀리 상계동으로 이사를 갔어도 늘 너를 그리는 내가 있어 고맙다며? 잘나고 미쁜 친구. 너는 내게 삶의 의미였지.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단다.

정구야, 바닷물 말라버린 소래 뻘밭에서 모두 축제를 벌이던 그 운동장에서 그렁그렁 눈물 흘리던 네 모습이 지금도 선한 데 벌써 삼십 년이 훌쩍 넘었네. 구로동, 퇴계원, 그리고 안산. 굽이굽이 네 삶의 흔적을 지우며 떠나던 모습들이 애잔한데 오늘도 네 모습을 볼 수 없어 이 친구는 그리움만 가슴에 담고 있다. 펑펑 내리는 눈. 그리움과 추억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무심하게 내리는 눈송이가 아쉽다.

태민아, 대한항공 다니는 아들이면 세상에 자랑할 만도 한데 아버님께서 미국에서 돌아가시며 많이 서운하셨겠네. 낼모레 몸이 불편하시다는 엄마 보러 LA 엘 간다며 술 좀 조금 마셔라. 그래도 술 한잔에 시인이 되고 술 한 잔에 세상을 크게 보는 도원역 자리 조그만 구멍가게에 앉아 있던 그 태민이가 지금도 내 눈에 차는 걸..

용권아, 나는 네가 세상에 부러움이 없는 줄 알았지. 그리 속 아픔이 있는 줄 왜 몰랐을까? 긴 머리칼이 세상을 쓰다듬고 찬찬한 모습에서 너는 세상을 쥐고 사는 줄 알았는데. 내가 너를 도와줄게, 너는 친구들을 그리워 하렴. 세상은 그렇게 다 함께 산다는 게 우리들이 아는 삶의 진실이라. 그저 작게, 혹은 조금 크게, 서로 도운다는 게 세상살이라는 것을 우리 서로 알면 그게 어른이 된다는 것을 함께 깨우치자꾸나.

성환아, 너는 내가 그리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더냐? 알면서 걸리적거림이 싫었던 것일까, 제물포 뽀빠이 제과점의 농담 짓거리도 "사랑의 종말을 위한 협주곡"의 애닮픔도 네 어머니의 푸짐한 보쌈김치를 들썩이게 하던 에로이카의 웅장한 떨림까지도 잊었더냐? 오늘 거무스름한 도원역 주변의 아스팔트를 덮어버린 푹신한 눈꽃이 네 마음을 덮었으면. 불콰한 내 얼굴이 하얀 눈송이에 가렸으면. 너와 나는 삼십 년의 시공간을 원망하지 않을 거야. 너는 내 친구야, 서라벌을 함께 뛰 놀던 은찬이도 네 친구이고. 낙지마당에서 술 한잔 하던 모든 친구들도 네 친구지..

친구들아! 오늘 눈이 무섭게 내렸구나. 세상이 이렇게 금세 변할 줄 몰랐는데, 술 한잔 마시고 문 밖을 나서니 모든 아픔도 가려지고 모든 삶의 흐름도 정지되었다. 도화동의 정념은 수 십 년 세월의 가느다란 인연을 동아줄로 잇고 있는데 그런 줄 알던 너희와의 우정이 이제는 굳건한 돌덩이 닮은 삶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산다는 게,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너희와 나를 친구로 맺어 이러구러 살게 하고 백 년까지 살게 하겠구나. 내 친구들아.

201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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