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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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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야기

누구세요?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7. 10:09

누구세요?

며칠 전 윤석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모께서 돌아가셔서 친구들에게 소식이나 전해 달라는데 참으로 안 되었다. 복더위에 돌아 가신 분도, 더위속에 장례를 치를 사람도 딱하다. 삼십여 년 전, 이글거리는 더위의 한 복판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 앞에서 느릿느릿 하관을 하는 모습을 보는데, 숨을 못 쉴 정도의 훅하는 열기 속에 검은색 상복을 입고 온통 땀에 절어 번들거리는 가족들이, 심신의 고통을 참아 내며 인고하던 그날이 또렷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부고를 보내자 A로부터 전화가 왔다.
"메시지 보낸 분이 누구세요?"

안쓰러운 물음이고 대답하기도 낯 간지런 말이다. 학창 시절 3년을 한 반에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서로 연락이 없다 보니 이름도 잊을 수 있고 기억을 못 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너를 기억하는데 너는 나라는 존재를 지우며 살고 있었구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다 보면 즐거움에는 반응들이 즉각적이고, 안 좋은 소식에는 비교적 조용하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연락을 주는 입장에서는 좋고 싫음에 우선해서 참석여부를 확인해야 할 때가 있는데 친구 녀석들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체적으로 먹여주는 사탕만 우물거리며 가부에 대한 답들이 뜨악한 편이다.

내가 총무는 아니로되 친구들의 연락처를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친구라 생각하여 기꺼이 연락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는 몇 명뿐이다. 그마저도 감사해야지.. 나 하나 감수하면 여러 친구들이 편하게 서로의 안부를 알 수 있고 좋은 일, 궂은일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했는데 이번처럼 연락하는 일에 서운함을 느껴 보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그 친구라고 동창의 이름을 잊고 싶었을까! 오랜 세월 제자들의 이름을 외우며 한 해 한 해를 지나는 동안 삼십여 년동안 접하지 않던 이름이야 잊고 살 수도 있는 것이지.. 어느 날 뜬금없는 부고에 당황할 수도 있는 일이라 치부하는 편이 마음 편한 일이다. 그나마 잘못 전달받은 메시지려니 아예 묵살하지 않고 확인 전화를 한 친구의 평소 성정이라도 알게 된 것을 더 고맙게 생각해야 하거늘..

그럭저럭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어제 또 바뀐 것 같은 전화번호만 달랑 적어 보낸 뜬금없는 메시지 하나가 내 심기를 건드린다. "아! 어쩌라고, 새 전화를 샀으면, 안부라도 물으며 자랑이라도 해야 하는 게 친구 아니냐? " B 야! 네가 보낸 전화번호 적은 메시지 무슨 의미인지 몰라 그냥 지워 버렸다. 필요한 얘기 있으면 직접 전화해라."

자기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기도 바쁜 세상이고 어지간한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다. 저마다 정신을 놓고 살아도 적어도 친구들만큼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 가야 세상 사는 맛이 날 텐데, 간혹 이런 일을 겪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조 섞인 푸념을 하게 된다.

어제는 말복이자 입추였다. 출근길의 나무 그늘 아래 찾아드는 아침 바람이 선선해졌다. 내 삶의 시계도 지금의 절기와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사색의 시간이 많아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잠시 서운하던 친구에 대한 감정의 찌꺼기는 허공에 흩뿌리고 이제부터는 다가오는 매 순간의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야겠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예의이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힘이 될 테니까...

201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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