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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60년 전의 국어사전 본문

내이야기

60년 전의 국어사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0. 15:49

60년 전의 국어사전

 초등학교 때 쓰던 국어사전을 찾았다. 어머니께서 워낙 구석에 보관했던 터라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사전을 보니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내게 있어 어릴 적 아버지의 존재는 술로 점철된 늘 불안한 이미지였지만 그 와중에 책만큼은 열심히 조달해 주신 분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보고 싶은 책은 아낌없이 챙겨 주셨던 아버지 덕문에 각종 세계문학전집류, 소설선집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지금껏 책을 곁에 놓고 살 수 있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농초등학교 2학년 때 김 정옥 담임 선생님께서 사전 찾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장롱에서 이 사전을 꺼내 주시며 늘 곁에 두고 찾아보라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열심히 이 사전을 이용했는데 졸업식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학생용 국어사전을 선물 받은 후부터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게 되었고, 할아버지께서 상해 출장 때 가지고 다니시던 고급 갈색 트렁크에 보관을 한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어머니 방 도배를 하며 문갑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이 사전을 되찾게 되었다.

사전의 발행연도를 보니 단기 4287 (1954)이라 올해가 꼭 환갑이 되는 해이다. 서울 장문사"발행으로 사전의 명칭은 "최신판 표준국어사전"이며 지은이는 현재 생몰년을 알 수 없는 사전 편찬가 문 세영 선생(1888년생)이시다. 이 사전은 본래 1950 5월 발간 예정이었던 듯 발간사를  1950 5월에 지어 놓았으나 전쟁이 발발 후 행불 되어 휴전 이 후년에 펴 낸 것으로 추측된다.

전쟁을 막 치르고 난 뒤 펴 낸 사전이라 종이의 지질이나 인쇄기기의 조악함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종이를 개어 본을 만들어 굳힌 뒤 검은 물감에 니스를 덧칠한 듯 두툼한 장정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전의 형태를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앞면과 옆면에는 인쇄가 아닌 유화물감으로 한 자 한자 쓰고 흰 별도 그려 놓고 하는 정성을 가득 들여 제작한 태가 여실하다. 뒷면에는 분홍빛 매화를 그려 놓은 본새가 선비정신을 추구하는 신 태희 출판 사장의 안목이 보이며 사전의 격을 높아 보이게 한 것으로 보인다. 본책은 예쁜 헝겊으로 표지를 하여 마감하였으며 본문 1,588쪽에 한자를 풀어 표시해 놓은 이두찾기쪽을 부록으로 첨부하여 전체 1,600쪽으로 펴 냈다.

측면은 지금처럼 사전의 색인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 자음별로 구간을 표시하고 파란색 잉크로 또박또박 자음을 하나씩 써 놓은 아버지의 정성이 눈에 그윽하게 차 오른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었던 사전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이 사전을 본지 오래되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참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지은이가 전쟁 중에 행불 된 사실이 떠 오르며 불현듯 전쟁통에 미처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해  부역자란 멍에를 짊어지고 사셨던 아버지의 일그러진 삶과, 연좌제의 그늘에서 절규하던 내 젊은 시절의 단편적인 그림자가 오버-랩 되며 묵지근하게 다가왔다.

항공사와 방산업체의 합격소식에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던 마음은 연이은 신원조회에서의 탈락이 주는 실망으로 세상을 원망하기에 이르렀고, 애통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비감을  그때는 몰랐다. 얼마 뒤 공무원 임용고시에 합격하자 내 손을 부여잡고 "이제 되었다.. 이제 되었다.."를 되뇌던 완고한 아버지의 눈에 매달린 조그만 이슬방울의 의미를.

그 가슴에 한이 맺혀 서린 이슬방울은 당신의 젊은 시절에 어쩔 수 없이 겪었던 비운의 사슬이 자식대에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자책하며  타들어가는 심장을 적셔 준 방울이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당신에 대한 죄책감에 사무친 독기를 그제사 스러지게 한 가뭄의 단비였을 터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단 한번 아버지의 눈가에서 이슬을 볼 수 없었으며, 스스로 술을 절제하시며 꼿꼿하게 사시다 가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살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요양병원에 계셔서 집으로 돌아오실 수 없는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하느라 어머니 방을 새로 도배하며 찾아진 국어사전에서 새삼스레 아버지를 그려 하게 되니  병원에 계시며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고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살아 가시는 어머니와, 어머니와 해로하시다 먼저 가신 아버지가 안 계신 안방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커 보인다.

 2014.9.12   - 그루터기 -

 지은이 문 세영[文世榮] 선생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찾았더니 호는 청람(靑嵐).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에 살았으며, 배재 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6·25 때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생몰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다.

1935년 조선어학회의 표준말 사정위원, 1936년 그 수정위원을 지냈다. 1938 7월 최초의 뜻풀이(주석) 국어사전인 약 10만 어휘의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을 이윤재(李允宰)의 지도와 한징(韓澄) 등의 도움으로 편찬하였다.

이를 기리는 뜻으로 당시 『동아일보』(1938.7.13.) 사설은 이제야 조선말로 주석한 조선말의 사전을 조선사람의 손으로 처음 만들어 가지게 된 것이다. 뒤늦은 것이 부끄러우나마 기쁨은 크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다시 1940년 12월『수정 증보 조선어사전』을 내었고, 광복 이후에도 이를 바탕으로 많은 국어사전을 펴내었다. 이름을 바꾸어 『우리말 사전』(삼문사,『최신판 표준국어사전』(장문사, 1954) 등과 책 부피를 줄여서 『중등 조선어사전』(삼문사,『국어사전』(대문사, 1949), 『표준 가나다 사전』(삼문사『표준 가나다 사전』(삼문사, 1953), 『순전한 우리말 사전』(문연사, 등 그밖에 비슷한 사전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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