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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김 경민 (작은애) 본문

가족이야기

김 경민 (작은애)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3. 23:56

김 경민 (작은애)


우린 집은 아들만 둘이다. 큰 아들은 군에 다녀와 직장을 다니고 있고 둘째 아들이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경민이다. 경민이는 태어나면서 우리를 힘들게 했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거꾸로 자리를 잡고 기어코 발부터 나오려 버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하고 세상 빛을 보게 하였다. 자라면서 한 때 그 센 고집은 나까지도 질리게 만들었다. 내 고집도 경민이 어린 시절 즈음까지는 꽤나 칼칼하다는 소릴 들으며 큰 애를 키우는데 일조를 하였으나, 네 살바기한테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네 살 무렵 여름 어느 날! 야단을 칠라 치면, 먼저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보이며 내 품 속으로 무조건 달려들었던 꾀쟁이 큰 애와는 달리 그날은 고집스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답시고, 어른답지 않게 노여움을 타 그 여린 조그만 궁둥이를 수 없이 때리는데, 제 자리에 꼿꼿이 서서 큰 소리로 울어 젖힐지언정 끝까지 용서를 빌지 않는 왕 고집쟁이에게 결국에는 경기를 우려한 내가 항복하고 말았고, 감정 섞인 매질을 깨달은 나는 그 이 후로 지금까지 매를 든 일은 없다.

이제는  유들유들하여 매를 들일이 있어도 맞지는 않을 큰 애는, 아비와 어미가 모두 장남이며 장녀인지라, 양쪽 집 모두 첫 번째 혼사로 태어난 아이며, 집안들의 친척 동기 중에도 첫 애로 태어 나는 바람에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하지만 작은 애는 큰 애와 여섯 살 터울로 다소 늦게 태어나, 고모며 이모 삼촌들이 결혼을 하는 통에 아무래도 형보다는 관심을 덜 받고 자랐다. 형제여서인지 마음이 여리고 모질지 못한 면은 닮았지만 , 그래도 성격과 심성에서는 차이가 난다. 큰 애는 어려서부터 모형 공작과 자동차를 좋아하는 쾌활한 아이로 자라더니, 결국은 자동차 정비공으로 나섰고, 지금은 매우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작은 애는 어릴 때의 고집스러운 면은 어디로 가고, 별스럽게도 학교에서의 적성검사 결과가 "농부"로 나왔는데, 그래서인지 점점 덩치에 걸맞은 느긋한 면을 보여 주고,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자상한 아이로 컸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뚱뚱한 우리 부부와 큰 애와 달리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며 가족의 자랑으로 군림하더니, 수영을 그만두고부터는, 살이 올라 지금까지 튼실한 외모를 가꾸며, 자랑거리였던 날렵한 몸매를 큰 애와 맞 바꾼 채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런 작은 애가 이번 대학 수시입학 논술고사를 치르며 우리 부부의 심장을 덜컹하게 만들었다. 공부하기에 열악한 집안 환경과 넉넉지 못한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던 아이가, 제 딴에는 집 형편을 감안한 결심과 행동이었기에 더욱 내게 속 깊은 아픔을 갖게 하였다. 십만 원이 채 안 되는 전형료지만 투망식으로 몇 군데에 내는 게 부담스럽다며, 달랑 한 곳에만 응시를 하지를 않나, 많은 학생들이 거금을 들인다는 개별 특강을 받는다던데, 얼마 안 되는 학원 특강비가 아까워 두 번밖에 안 하는 강의마저도 한 번으로 만족한다고, 별 효과 없어 안 듣는 거라 괜찮다며, 외려 부모를 안심시키던 작은 애의 속 깊은 마음을 헤아려 보면,,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했던 내 고교 시절을 대물림한 것 같아, 더욱 갑갑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이번 시험을 단 번에 합격하게 되면 그보다 더 좋을 일이야 없겠다만, 설혹 수시입학이 안 되더라도 아직은 본 평가의 기회가 남아 있으니, 이번과 같은 독단적인 판단을 하여 만에 하나 실수하지 않도록 작은 애를 다독이며, 알아듣게 설명하였으나, 혹여 앞으로 살아가는데 이러한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낙인이 되어, 상처를 받으면 어찌할까 하는 나의 과거로 인해 투영된 마음 한 구석의 섬뜻함은 아직도 지워지질 않고 있다.

시험 당일날! 손목시계를 가져오지 않아 불거진 작은 애에 대한 아내의 나무람도, 수험생의 입장에서 미리  챙기지 못한 작은 애에게 잘못이 있지만, 부모역시 책임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겠다. 그래도 시계를 구입해 수험장에 들어가서 맘 졸이지 않고 시간 내에 시험을 치른 것으로 시계 값은 충분히 치렀노라고 반론하는 작은 애의 구시렁거림이 참으로 귀엽다.

물론 앞으로 닥쳐오는,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에 대한 대처들은 본인 스스로 해야겠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 겪어야 하는 문제만큼은,조언을 해 줄 수 형이 있고,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일가붙이들과 상의라도 하였으면 하는 부모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번에 치른 시험은 선뜻 합격하여 이러한 근심을 기우로 날려 보내고 큰 즐거움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덩치가 산 만한 작은 애의 두들두들한 얼굴과 입술에 뽀뽀를 하고 싶은 아비이다.

" 2009년도 인하대 수시입학 논술시험"을 치른 사흘 뒤 마음에 평정을 되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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