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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본문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초등학교 4학년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대중가요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너무도 멋지게 김 상국의 "불나비"를 불러 젖힌 녀석이 있었다. 덕분에 그 아이는 반에서 아주 유명인사가 되었다. 우리 집에는 T.V는커녕 지지직거리는 "금성 라디오"밖에 없던 때였는데, 채널 선택권조차 없이 그저 들리는 대로 라디오 연속극 주제곡이나 흥얼거리던 내게는 너무도 생소했던 대중가요에 대한 경험이었다.
그 후~대중가요에 애착을 갖고 공책에 가사를 써 가며 배운 "박 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에 빠졌었는데. 휘파람으로 부르는 후렴구의 루루--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와 입술을 오므리며 한참을 배운 터라, 지금도 가사를 안 보고 부를 수 있는 몇 곡 중 하나이다. 이 노래를 시점으로 32 절판 "포켓 대중가요" 책을 사다가 본격적으로 가요를 배우던 즈음에.... 또 다른 형태의 음악인 포크-송이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고 있었다.
당시 독학으로 배운 기타실력이야 오죽했겠냐마는 그래도 야외에만 나가면 청춘의 열기를 타고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포크-송이 나오기 전만 해도 "목장길 따라"나 "예 포이 타이 타이 예야"와 같은 외국 민요곡들을 부르곤 했으나, 포크-송이 유행하면서부터는 차츰 박인희의 "모닥불"이나 양 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은희의 "꽃반지 끼고" 등으로 분위기를 살리고,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등으로 흥을 돋우곤 했다. "라나에 로스포"의 "사랑해"와, "뚜아에 무아"의 "그리운 사람끼리"는 여학생들의 대표적인 주문 곡이었다. 이외에도 어니언스의 노래들 중 "편지"" 사랑의 진실"을 부르면서, 한껏 화음을 맞춰가며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지곤 했다.
"야전" (야외전축의 준말) 이라고 부르던 포터블 전축도, 함께 등장한 시절이었다. 원판은 비싸서 해적판이라 불리던 복사판을 청계천 등지에서 사 가지고 "비너스" 나 " 더 나잇 시카고 다이", " 킾 온 러닝" 등을 틀어 놓고 음악에 대한 욕구를 풀던 사춘기 시절의 한 장면이 떠 오른다.
70년대엔 청바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포크-송 가수들을 비롯해 수많은 청춘들이 너나없이 청바지를 즐겨 입었었다. 그 유행에 뒤질세라 배다리 양키시장에서 보세 청바지와 빨간 티 -셔츠를 사서 입으면 멋쟁이 소릴 듣던 시절! , 자주 다니던 "뉴-반도" "신광" "팽고 팽고" "인형 고고장"에서 청춘을 포효하며 발바닥 부르트게 춤을 추던 모습도 생각난다. 항상 함께 하던 큰 Y, 작은 Y, 그리고 K 모 양의 환한 웃음과 함께 몸들을 꼬아대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는 그 모습들이 새삼스럽게 눈앞에 와닿으며 기억을 추스른다.
잠시 시간을 되돌린 중 3학년 어느 날! 작은 외삼촌 댁에서 학교엘 다닐때였다.무료한 일요일 한 낮! 고급 태광 에로이카 전축의 레코드 보관함에서, 판소리와 배호, 남 진, 이 미자 등의 몇몇 디스크를 뒤적이다, 패티-김의 음반을 발견하고, 데크에 걸어 노래를 감상하던 중, 수록되어 있던 "태양은 불타는데"(Cuando Calienta El Sol)라는 칸소네 곡을 듣게 되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이태리 말이라도 패티-김의 시원한 창법으로 부르던 그 노래는 어린 맘에 활화산 같이 솟아오르는 벅찬 감동과 희열을 안겨 주었다. 교과서 음악과 대중가요와는 또 다른 세계의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겐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느낌을 받은 이후로," 디-스테파노"와 "파바로티"와 같은 테너 가수들이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와 합창곡에도 관심을 갖고 또 기악곡의 매력에 빠져 한참 동안 "카라얀" 흉내도 내보고, "에디뜨 삐아쁘"의 묘한 매력에 흠뻑 취해도 보았고..."루이 암스트롱"으로 정착하는 듯싶더니 다시금 "나나-무스쿠리"와 "죤-덴버"로 장르를 옮겨 다니며 음악의 다양한 세계를 만끽하였다. 아무튼 장르를 넘나드는 정신없는 음악 편력에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갔다.
어느덧 77년 대학가요제가 시작되며, 음악적 기호의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면서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와 "라이너스의 "연" "활주로의" "탈춤"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등의 그룹사운드의 음악과 부산대생들 7명이 모여 썰물이라는 중창단을 구성하여 부른 "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등을 즐겨 부르게 되었다. 차츰 시간이 흘러 민중가요가 유행하며 "노찾사"가 대중 전면에 나서고, 또 다른 사람들은 기타와 드럼과, 파워 넘치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면서 보컬의 갈라지는 목소리를 추켜세우는 헤비메탈 그룹들인 들국화와 시나위, 백두산, 부활 등에 열광했지만, 나는 정신없는 그네들에게 별로 흥미를 느끼질 못했다. 다소 부드러운 몇몇 곡들만 추려서 흥얼거린 걸 제외하고는... 대신 이 문세나 김 종찬 , 최 성수의 부드러움을 더 선호했다. 술 한잔 하게 되면 스탠드-바에서 나 훈아의 "고향역"을 맛깔스레 불러 젖히는 흥취를 즐겼다.
그러다 점점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오느새 90년대 들어섰는데 서 태지나 김 건모 , 공일오비들의 노래가 귓가를 건드려도 별 감흥을 못 느끼고, 조 성모나 H.O.T, G.O.D, 가 득세하다가 사라져도, 이어 동방신기나 SS501이나 , 슈퍼-주니어 등이 요란하고 정신없이 T.V화면에서 떠들어도 별 음악적 즐거움을 못 느낀다.
바로 세대 차이인가 보다. 난 그저 7080 음악이라 불리는 가수들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트윈-폴리오(두 분들은 올해 환갑들이다.)나 인순이를 좋아하는 세대로서 만족을 하며 음악적 취향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다. 내 블로그 음악들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젊은 시절의 열정이면 그럴듯한 나만의 음악적 취향이 듬뿍 배어 있는 그런 블로그를 만들었을 터이지만, 젊음을 보내고 나니 자기 취향에 대한 열정도 식어가며, 자기가 좋아해야 할 것도 두리뭉실해지나 보다. 점점 자기 계발이 더욱 필요한 시기인데 말이다..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 지금 당장 큰 아들의 MP3부터 챙겨서 다시 한번 젊을 때의 내 감성에 날개를 달고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봐야겠다
2007.1.20 - 그루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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