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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벌써 일 년 본문

내이야기

벌써 일 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7. 11:40

벌써 일 년

영안실에서 환하게 웃던 그를 떠나보내고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지내던 날! 나지막이 부드럽게 울리던 그 목소리가 다시 생각난다. 반팔 체크무늬의 옆 깃 흔들림을 주며 함께 자리에 앉던 그 정겨움의 느낌과, 낡은 갈색 랜드로바의 잔잔한 흰 트임에서 그의 오래되고 친숙한 부드러운 미소를 본다.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서 또다시 그의 옛 모습을 떠 올린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그 만의 장난과 독특한 키득거림이 여럿을 즐겁게 미소 짓게 하던 이작도의 밤을 떠 올리게 한다.

오늘같이 비 온 뒤 맑은 날! 저 멀리 백운산 자락을 낮게 날아가는 하얀 새의 날갯짓에서 맑은 심성을 가진 그의 자태를 떠 올리며 시린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 그는 내 추억의 한 귀퉁이를 모질게 잡아끌고 있다. 한 때 생각을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던 지인들도 뜨악하면 잊히는데, 나의 전화기에는 아직도 그의 이름 석 자가 선명히 남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다시 한번 불러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유 동석 011-729-1697 "

이제 아무도 그에게 이 번호로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와 함께 떠나가 버린, 그만을 그리는 이의, 남아있는 그의 자취일 뿐이다. 내 어린 시절의 사랑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 주시던 할머니의 묫자리 일련번호와 함께 애틋한 그리움을 함께하고 있다.

깨끗한 물과 같던 사람! 친구들과 선 후배 모두에게 한결같은 정을 주던 그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다. 수 십 년 동안 그와 함께 해 오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희로애락에서 "怒"의 표현이 거의 없이, 마음이 사랑스러운 그 이름. 그와 함께 한 소소한 행복을 추억하며 지금도 그를 기린다.

비 오던 어느 날! 퇴근길 차 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보며 술 한잔 생각에 무심코 전화를 꺼내 들었지만,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깜빡이는 화면만 쳐다보는 멍한 내 모습에 안경 언저리만 뿌옇게 흐려지고 창 밖으로 빗줄기만 흘러갔다. 살아오며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는데, 그냥 그렇게 만나던 날들이 편하기만 했었는데, 그의 떠남으로 인해 관계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그의 떠남으로 인해 그리움의 소중함을 알게 된 나의 어리석음이 싫다. 한 순간 떠나간 그의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기만 하다.

이즈음! 그를 생각하며 그리는 시간들의 간격이 점점 늘어져감을 느낀다. 이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씩 그렇게 지나가며 희석되고 옅어지다 그냥 딱지 앉은 상처가 될까 두렵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마음의 샘 속에 고이 가라앉아 있을지라도 지나치던 바람과 들짐승의 목마름이 일으키는 물결을 인화지 삼아 이따금씩 그를 추억하며 그리워할 것이다. 장지 문위에 걸린 흑백사진들의 할머니, 아버지를 그리듯이....

2008년 6월  몇 날 동안 형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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