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양파즙#도리지배즙#배도라지청#의약용파스#완정역#호경형
- 인천대공원#포레#파반느#단풍
- jzzz&blues
- 당화혈색소6.7#녹내장주의#아마릴정1일투여량1알줄임#자월보신탕24년3월폐업
- 碑巖寺
- 누가바#상윤네집#진열이#금복
- 동인천역 가새표#남수#보코#친구들
- 경로석#한국근대문학관#윤아트갤러리
- piano
- new trot. male vocal. 60bpm. piano. cello. orchestra. lyrical. languid.
- 70-80bpm
- 석민이#경민이#도화동시절
- 인천 중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 감정의 깊이가 다른 말
- 티스토리챌린지
- 추억의도시
- fork. male vocal. 75 bpm.piano. cello. lyrical. lively.
- blues&jazz
- lost in love "잃어버린 사랑" - 에어서플라이 (air supply)#신포동#ai가사
- male base vocal
- 1mm 치과
- male vocal
- Saxophone
- 오블완
- y.c.s.정모
- 인천시민과함께하는시화전
- uptempo
- 60bpm
- 익숙해질 때
- 인학사무실#참우럭#놀래미#도미#금문고량주#두열#제물포#마장동고깃집#마장동
- Today
- Total
목록전체 글 (3196)
형과니의 삶
옥수수빵을 그리며 지금은 물질이 풍요로운 세상이다. 우리 어릴 때는 왜 그렇게 먹을 게 없었는지! 정말 힘든 어린시절이었지만 그때 먹던 먹을거리들이 지금 입맛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어찌 된 영문일까? 학교를 파하고 앉은뱅이 찬장에서 꺼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떠 먹던 고소한 식은 좁쌀죽 맛은 아직도 내 입속에서만 감돌뿐, 그 시절 이후 먹어본 적이 없다. 4학년부터 급식 빵을 나누어 주었는데 겉모습은 거무튀튀하고, 딱딱해 보이는 옥수수 빵이었다. 반으로 쪼개면 노르스름한 속살에 맑은 거미줄 같은 것이 주욱 늘어나던... 하지만 맛은 거칠어도 엄청 고소한 빵이었다. 꼭 반만 먹고 나머지는 4살 배기 여동생에게 가져다주면 참 맛있게도 잘 먹었다. 이 빵도 4학년 이후 먹을 기회가 없었다. 100% 순..
다 락 방 다락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 올리게 한다. 물론 어려움과 고난을 상징하는 단어일수도 있다. 안네 프랑크처럼 다락방에 은신하여 살았다던가, 6.25 전쟁 시절 다락방에서 숨어 기거했다는 어른들의 고생 담을 듣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락방 하면 할머니와 숨겨놓은 사탕 과 과자, 그리고 숨바꼭질, 놀이터 등을 떠 올리며, 살포시 미소 지을 것 같다. 나 역시 다락방에 대한 기억이 없을 수 없다. 나의 다락방에 대한 기억은 은근한 추억과 고난! 두 가지를 동시에 떠 올리게 한다. 외가댁 다락방은 6-7세의 어린 내가 오르기에는 무척 높았고, 컴컴하다 못해 좁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오르기만 하면, 먹을 것의 보물창고였다. 곶감, 무지개 ..
선 택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다. 그중에는 본인이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 있고 무릎을 치며 후회할 선택도 포함되어 있다. 자기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는 선택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회사와, 국가를 위한 선택도 있기 마련이다. 몇 년전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들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아직도 한숨과 절망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번에도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 매우 어렵게 되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리없이 차선책을 택해야 하는 나나 우리 국민들이 불쌍하다. 나도 직장에서 수많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설 때가 많았지만 대과 없이 퇴직을 할 수 있던 것은 선택에 사심이 없었고,..
아따맘마와 닮은 내 아내 요즘 TV 만화영화에 "아따맘마"라는 프로가 있다.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로 주인공인 "아따맘마"는다소 엉뚱하고 귀염성 있고, 자린고비 정신이 투철한 두 아이의 엄마이다. 올 여름 철원 처 이모님 댁에 놀러 가던 차 안에서의 일이다. 작은 처제가 얘기 중에 언니는 영락없는"아따맘마"라고 서두를 꺼내자, 큰 처제와 아들, 그리고 조카애들까지 심지어 동서까지도 이구동성으로 "맞다" " 맞다"를 외치는 게 아닌가! 만화영화의 주인공과 언니의 생활사고방식이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한 나만 세대차이를 느끼는 구닥다리가 된 순간이었다. 처제의 얘기를 듣고는 그런 캐릭터가 다 있나 하고, 궁금해하던 차에 일부러 "아따맘마"프로를 찾아보고는 "아하" 하며 무릎을 치고 말았다. 정말 그랬..
처 제 들 내겐 처제가 세 명이나 있다. "아니 처제 셋이 무에 많다고 그리 내세우나 " 하고 한마디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세명이 결코 적은 인원은 아니다. 대소사를 치르다 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처제와 형부라는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괜스레 정이 뚝뚝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른이는 어떨지 몰라도, 내겐 그런 느낌으로 와닿는다. 작은 처제는 정이 많고 친절해서인지 몰라도 간혹 내게 오빠라고 부르고는 당혹해하기까지 한다. 워낙 오랜 세월을 함께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피붙이 같은 느낌을 가졌나 보다. 그게 형부와 처제 사이인가 보다. 집사람과 처제들은 자기들끼리 이름 끝 자에 "코" 를 붙여 별명을 삼았다. 참 독특한 작명 방식이다. 아내는 " 복코 " 큰 처제는 "자코 " 둘째처제..
아버지라는 이름 나는 아버지에 대해 살갑거나, 존경스럽다거나, 정겹다는 표현을 하기에 어색함을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까지,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해보고 그저 약주 드시고 하시는 일방적인 말씀을 머리 수그리고 듣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대체 내 아버지는 일과, 술과, 담배로만 점철된 참으로 단순하고, 굴곡없는 평범한 삶을 초지일관 살아내셨을까 ? 평상시에도 무뚝뚝하고 과묵하시며 휴일에도 별 말씀 없이 신문과, T.V 시청만 하신, 결국 당신의 삶에 윤활유가 될만한 행동을 한 번이나 해 보셨을까 하는 의문만 갖게 했다. 정년 이후에도 일만 하시다, 덜컥 폐암 3기의 진단을 받고 제대로 손도 못 써본 채 생을 마감한 너무나도 억울해 보이는 삶을 사셨다.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을 굳이 표출한다면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