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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한산시 寒山詩 - 인생이란 한바탕 세간속의 꿈 본문

한산시, 사자성어

한산시 寒山詩 - 인생이란 한바탕 세간속의 꿈

김현관- 그루터기 2023. 8. 11. 00:15

 

한산시(寒山詩)

 

한산자(寒山子)의 노래 -한산시(寒山詩) 중에서-

人生在塵夢 (인생재진몽) 인생이란 한바탕 세간속의 꿈
恰似盆中蟲 (흡사분중충) 마치 동이 속의 벌레와 같구나

終日行遼遼 (종일행요요) 온 종일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不離其盆中 (불리기분중) 끝내 동이를 벗어나지 못하네

神仙不可得 (신선불가득) 본래 부처이면서 알지 못하여
煩惱計無窮 (번뇌계무궁) 번뇌만 치성하여 끝이 없구나

歲月如流水 (세월여류수)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須臾作老翁 (수유작노옹) 잠시간에 늙은이 되고 만다네

四時無止息 (사시무지식) 세월은 사시장철 쉬지 않고 흘러
年去又年來 (년거우년래) 한 해가 지나가면 또 한 해 오네

萬物有代謝 (만물유대사) 만물 꽃피고 잎지느라 바쁘건만
九天無朽摧 (구천무후최) 구만리 높은 하늘 티끌이 없구나

東明又西暗 (동명우서암) 동방이 밝아오면 서녘은 어둡고
花落又花開 (화락우화개) 꽃은 피고 떨어지면 다시 피는데

唯有黃泉客 (유유황천객) 오직 황천으로 떠나간 나그네는
冥冥去不廻 (명명거불회) 한 번 가더니 돌아올 줄 모르네

我見世間人 (아견세간인) 세상사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茫茫走路塵 (망망주로진) 욕망을 좇아 분주하도다

不知此中事 (불지차중사) 자기가 쓰면서도 이를 모르니
將何爲去津 (장하위거진) 어떻게 고해를 벗어날 것인가

榮華能幾日 (영화능기일) 부귀영화 좋은들 몇 날 이던가
着屬片時親 (착속편시친) 애착하며 사랑해도 잠깐이로세

縱有千斤金 (종유천근금) 천금이 그대 수중에 있다 한들
不如林下貧 (불여임하빈) 산림속 청빈낙도와 같을 손가

生前太愚痴 (생전태우치) 내 전생에 너무 방탕하여
不爲今日悟 (불위금일오) 오늘도 깨우치지 못했네

今日如許貧 (금일여허빈) 금생에 이렇게 가난한 것은
總是前生作 (총시전생작) 전부 전생에 지은대로 일세

今日又不修 (금일우불수) 그런데 오늘 또 닦지 않으면
來生還如故 (래생환여고) 내생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

兩岸名無船 (양안명무선) 해탈을 향한 이 배가 없으면
渺渺難濟度 (묘묘난제도) 아득한 고해를 어찌 건너랴

男兒大丈夫 (남아대장부) 모름지기 남아 대장부라면
作事莫莽滷 (작사막망로) 거칠고 어지럽게 살지 말라

勁挺鉄石心 (경정철석심) 굳세기 철석같은 마음으로
直取菩提路 (직취보제로) 곧장 불생불멸의 길을 가라

邪路不用行 (사로불용행) 도리가 아니면 행치 말지니
行之枉辛苦 (행지왕신고) 갈수록 더 고통스러우리라

不要求佛果 (불요구불과) 부처를 구할 필요가 없다네
識取心王主 (식취심왕주) 그 마음이 주인임을 알지라

可貴天然物 (가귀천연물) 귀하구나 천연의 일물이여
獨一無伴侶 (독일무반려) 오직 혼자일 뿐 짝이 없네

覓他不可見 (멱타부가견) 찾으려 하면 볼 수 없으나
出入無門戶 (출입무문호) 창도 문도 없이 드나드네

促之在方寸 (촉지재방촌) 가까이는 이 마음에 있고
延之一切處 (연지일절처) 넓게는 일체처소에 있네

爾若不信受 (이약부신수) 그대 믿고 받들지 않으면
相逢不相遇 (상봉부상우) 마주하거늘 보지 못하네

家有寒山詩 (가유한산시) 집 안에 한산의 시가 있으면
勝汝看經卷 (승여간경권) 경전을 읽기보다 나을 테니

書放屛風上 (서방병풍상) 병풍 위에 잘 써 붙여두고
時時看一遍 (시시간일편) 틈나는 대로 읽어 보시게

 

한산자 (寒山子 ?~?)

당대의 고승이자 시승으로 때로는 은자. 도사. 심지어는 광인으로 불리었다. 그의 속명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몸소 농사를 짓고 공부를 했던 그는 자신을 빈자라 칭했고 또는 한산자라 했다.

비쩍 마른 몸매에 닳아빠진 바지저고리, 찢어진 신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를 쓴 그는 누가 봐도 거지였다. 그는 천태산의 국청사에 들어가려 했으나 너무나 남루한 몰골로 인하여 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청사 바깥에서 떠돌던 그는 그곳에서 밥짓는 일을 하던 습득(拾得)이라는 승려를 알게 되어 먹다 남은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습득은 국청사의 승려 풍간(豊干)이 길에서 주웠다가 길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 뒤로 한산자는 국청사에서 습득을 도와 설거지를 비롯하여 온갖 궂은일을 하며 살았는데 천생연분처럼 두 사람은 짝을 이루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다 헤진 옷을 입고 미친듯한 행동을 하기도 하였으나, 때로는 오묘한 선문답을 나누는 등 남다른 면도 있었다.

한산(寒山)은 오랜 시간 천태산(天台山) 한암(寒巖)에 머물렀다. 이때 시를 지어 돌이나 나무 등에 새겨 놓았는데 600여수가 되었다고 하나 일부는 실전되고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 310여편만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사정이 이러니 한산자에 관련한 기록과 온갖 설들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고 다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한산자와 습득은 당나라의 선승으로, 이제까지는 당나라의 초기의 전설적인 사람이라 하였으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실제 인물로 보아 8세기 무렵까지 생존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산자의 출생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그 견해가 다른데 정관설이 비교적 많다. 한편으로는 정관 연대에 한산자와 습득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다는 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