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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창룡문 앞에서 본문
창룡문 앞에 서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이곳, 수많은 추억이 깃든 이 성곽 앞에서 느껴지는 이 낯선 생경함은 무엇일까요? 익숙해야 할 이곳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한 사람이면서도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 부서진 성문 위를 뛰어다니며 놀던 그때의 나는 이곳이 마냥 넓고 커 보였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던 동네의 풍경은 한없이 넉넉하고 따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는, 그 시절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간직한 그 아이가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흰머리가 세어버린 지금의 나와, 유년기의 순수함을 간직했던 그때의 나는 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입니다. 세월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고,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면서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지나간 과거로 밀어내고 맙니다.
이제 나는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점점 과거의 내가 되어갑니다. 미래의 나는 또다시 지금의 나로 다가오겠지요. 그렇지만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나로 만들어준 이곳, 내 인생의 시작점인 창룡문 앞에서 나는 시간을 초월한 무언가를 느낍니다. 그것은 아마도 귀향의 마음, 본디 내가 속한 뿌리를 찾아가는 마음일 것입니다.
성곽의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속에서,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고, 지나온 길을 되새기며, 지금의 나를 돌아봅니다. 비록 세월은 흘러 나를 변하게 했지만, 이곳에 서 있는 한, 나는 언제든지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귀향의 마음은 아마도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까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를 그리워하며, 그러나 여전히 나를 이루고 있는 그 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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