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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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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사는이야기

금줄

김현관- 그루터기 2024. 12. 6. 10:28

 

금줄

가까운 공원에 자주 가보는 처지이다. 가벼운 보행을 위해서다. 역병 사태가 들이닥친 후 공원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정자 비슷한 곳에는 노인들이 더러 모여 있고 운동기구에는 주로 여성들이 매달려서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확진환자가 늘어나면서 정자 비슷한 곳에 '위험 Danger 안전제일'이란 붉은 글씨가 보이고 붉은 줄이 쳐진 비닐 포布 같은 것이 둘러져 있다. 접근하지 말라는 표시다. 그러더니 며칠 후 이번에는 운동기구 자체에 모조리 표지가 둘러져 있다. 저런 걸 무어라고 해야 하나? 순간 '금줄'이란 말이 떠올랐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말이다.

아이를 낳았을 때 부정을 꺼리어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간에 건너매는 새끼줄이 금줄이다. 사내아이를 낳 았을 때는 새끼에 청솔가지, 숯등걸, 붉은 고추를 끼고,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는 청솔가지와 숯등걸만을 끼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병원이나 산원에서 아기를 낳는 세상이 되고 나니 금줄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벌써 완전히 자취를 감춘 지가 오래다. 그런 맥락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보면 전에는 걸핏하면 부정 탄다는 말들을 했다. "꺼려서 피할 때에 생기는, 사람이 죽거나 하는 불길한 일"이 부정이라고 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다. 그것만 가지고는 젊은 세대들은 납득이 잘 안 될 것이다. 내 고향에는 속칭 '약막'이라 하는 일종의 폭포가 있었다. 수풀 속 바위에서 찬물이 쏟아지는데 한여름에 몇번 찬 물을 맞으면 그해엔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시골 아줌마들이 즐겨 찾아가 찬물을 맞았다. 그런데 약막 가는 도중에 혹 뱀을 보게 되면 부정을 타서 효험이 없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후일을 도모하며 가다 말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미신이나 속신과 관계되는 일이어서 요즘 부정 탄다는 말도 좀처럼 들어볼 수 없게 되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마을에서 도깨비가 사라졌다"는 말들을 동네 노인들이 했는데 그와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사라지는 말들 / 유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