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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k. male vocal. 75 bpm.piano. cello. lyrical. lively.
- 경로석#한국근대문학관#윤아트갤러리
- 익숙해질 때
- 누가바#상윤네집#진열이#금복
- Saxophone
- 양파즙#도리지배즙#배도라지청#의약용파스#완정역#호경형
- 인학사무실#참우럭#놀래미#도미#금문고량주#두열#제물포#마장동고깃집#마장동
- 당화혈색소6.7#녹내장주의#아마릴정1일투여량1알줄임#자월보신탕24년3월폐업
- 동인천역 가새표#남수#보코#친구들
- uptempo
- 1mm 치과
- piano
- 70-80bpm
- 티스토리챌린지
- 오블완
- 碑巖寺
- male vocal
- 감정의 깊이가 다른 말
- 인천시민과함께하는시화전
- lost in love "잃어버린 사랑" - 에어서플라이 (air supply)#신포동#ai가사
- 추억의도시
- blues&jazz
- 석민이#경민이#도화동시절
- new trot. male vocal. 60bpm. piano. cello. orchestra. lyrical. languid.
- jzzz&blues
- y.c.s.정모
- 인천대공원#포레#파반느#단풍
- male base vocal
- 60bpm
- 인천 중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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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인천풍경 (117)
형과니의 삶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들을 그리움에 젖게 한다. 수인선 「꼬마열차」도 그런 아쉬움과 추억을 남기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역의 「명물」중 하나.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였던 수인선은 일제의 물자수탈 수단으로 탄생했지만 반세기 넘게 인천-수원간 해안가 서민들의 발노릇을 톡톡히 하며 이들의 애환을 실어 날랐다. 열차 한량이 시내버스보다 작고 볼품도 없었지만 교통수단이 부족했던 수인지역 주민들에겐 더 없이 소중했다. 그러다 산업화·도시화 물결에 밀려 운행 58년만인 지난 95년 12월 31일 「퇴역」했다. 일제는 1937년 경기도 이천·여주 지역 쌀과 소래·남동 등지의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수원역_남인천역(지금의 중구 신흥동)간 수인선(52.8㎞)을 완공, 협궤열차를 운행했다. 당시 일본은 여주·이..
수문통의 옛모습과 2008년모습 작은 배 드나들던 갯골 수로 - 수문통(송현동 일대) 지금은 복개해 도로로 이용하고 있는 동구 송현동 일대 수문통은 원래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수로로 넓은 갯벌과 갈대밭이 무성한 저지대였다. 수문통의 유래는 이렇다. 제물포항 서북쪽 동구 만석동에서 북쪽지역인 송현·송림동까지 해안이 이어졌고 괭이부리(묘도)에서 지금은 육지가 된 인천교까지 넓은 갯골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곳 갯골에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구문(水口門)이 있어 수문통(水門通)이라 불렸다. 수문통은 화수·화평동, 송현·금곡동 등 인천시가지 중심부로 깊숙이 이어져 있었다. 옛 화도진도를 보면 지금의 화수동과 송현동 사이로 여러 갈래의 꾸불꾸불한 작은 실개천이 한줄기로 모여 흐르는 것으로 그려 있다. 당시 수문통..
인천 개항 100주년 기념탑 1983년, 연안부두 항운아파트 앞 대로 한복판에 '인천 개항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졌다. 높이가 30m나 되는 거탑이었다. 전면에는 시인 모 씨(某氏)가 쓴 '개항 찬가', 상단에는 한국인 어부상과 고깃배, 그 위 아치 형 구조물 꼭대기에는 그리스 풍의 여신(女神)이 엉뚱하게 내륙 쪽을 향하여 선 형상이었다. 그 기념탑은 건립 20년이 되는 2003년에 헐리고 말았다. 인천시가 각계의 철거 요구에 응한 것이었다. 이유는 상징성 결여와 교통 체증 유발이었는데,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제자리에 서지 못한 기념물의 운명을 보여준 사례였다. (조우성- 인천일보:미추홀: 백범동상 글 중에서 발췌)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인천에는 세가지의 100 주년 기념탑이 있다. 자유공원에 있는 "한미수교 100주년기념탑" 지금은 없어진 "연안부두 입구의 (개항100주년 기념탑"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의 세가지가 있다.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외진곳에 있어 모르는 인천시민들이 꽤 많을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월미도 가는 길가에 위치한 탓에 쉽게 보이지도 않는다. 1885년 4월5일. 거친 조선의 바다를 바라보는 벽안의 선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은둔의 땅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건 항해 끝에 제물포 입항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이 땅에서 벌어질 어떤 어려움도 주님이 주시는 용기와 인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