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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내생각들 (91)
형과니의 삶
피에로가 되고 싶은 마리오네트 가을에 들어선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이른 새벽 공기가 제법 시원해진 것을 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계절은 스스로 물러날 때와 들어설 때를 어기는 법이 없음이 기특하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네 인간들이 끊임없이 성찰하고 배워야 할 덕목을 몇 천년 동안 자연스레 가르치고 있거늘 인간들은 어찌 끝 간 데 없는 교만과 욕심에 그득한 성정으로 삶을 그르치는데 초지일관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올여름은 말 그대로 염천이었다. 게다가 가뭄이 천지에 내려 쉼 없이 채찍질했는데 정작 채찍에 맞아 정신 차려야 할 위정자들은 멀쩡하고 애꿎은 백성들만 멍들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직과 책임감은 실종되었고 협잡과 이간질에 끝모를 이기적 탐욕으로 나라를 병들게 하는 이들의 존재가치는 있을지..
선녀바위에서 하룻밤을.. 늘 처가 모임을 주관하고 흥을 나누는 작은 동서의 제안으로 선녀바위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설과 추석이면 의례 동서들 모두 처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바 음식을 장만하여 외지에서 하룻밤 지내는 것도 장모의 일손을 덜어 주니 그것 참 좋은 궁리였다. 슈퍼 문이 둥실 떠 오른 선녀바위의 바닷가에서는 폭죽과 함께 젊음의 노랫소리가 넘친다. 오래전 이곳의 출장소에서 근무하던 때 낙도 오지의 정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해수욕장 주변은 가히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환경이 급변했다. 다만 변화의 양과 질이 저급하여 그다지 반길 수 없음이 문제이다. 늘어난 것은 그저 유흥과 잠자리밖에 없다. 그것도 참고 보아 줄 만은 하지만 체계 없이 우후죽순 격..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 참으로 덥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찜통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매미는 한낮에 시원하게 울어 댄다고 해야 하나 아님 노래한다고 해야 하나? 그저 그악스럽게 발광을 한다고 해야 열불 나는 속이 가라앉을 것 같은 염천이다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라! 찌는 듯한 더위에 머리에는 관을 쓰고 허리에는 띠를 매고 젊잖게 예복을 갖추고 있노라니 더위를 참다못해 미칠 것 같아서 큰소리로 부르짖고 싶다는 뜻인데 당나라 시인 두보의 조추고열(早秋高熱)이라는 시에 나오는 말로 두보가 화주에 부임한 직후에 쓴 글이다. 의관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더위를 온몸으로 부딪어야 하는 관리의 체모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멋진 문장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야 저리 미련 떨 일은 없지마는 이 찌는듯한 더위에 8..
역린을 생각하다 사무실 앞에 늠름하게 자라고 있는 해송이 있다. 평소 무심하게 지내며 관심도 없었지만, 우연하게 나무 옆을 지나다 상처가 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언제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처를 입고도 의연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한비자의 용의 비늘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용이라는 상상 속의 상서로운 동물은 의외로 순하여 등에도 탈 수 있다고 하지만, 목부분에 있는 거꾸로 서 있는 비늘 즉(역린-逆鱗)을 건드리게 되면 매우 노하여 건드린 자를 죽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면이 있고, 그 사회에서의 구성체로서 그 역할을 해 나가며 인생을 꾸려가게 된다. 예전에도 그러하고 지금도 인, 의 예, 지, 신을 지키며 사람의 도리를 ..
새해에는 知,⾔,⾏의 일치를 좋은 말이 세상을 떠 돈다. 마음속에서는 그대로 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긴다. 사실 좋은 말의 실행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응당 행하여야 할 도리이고 기본이니 당연하게 느꼈는데 요즘에는 좋다는 말과 글이 어느 순간부터 뜻도 없고 의미도 없이 제 멋대로 돌아다닌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좋은 말이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왜 생각을 하나? 그래!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말이라는 게 왠지 이상하다. 요즘 내게도 좋은 말과 생각에 대한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주로 친구와 아는 분들로부터 하루에도 수십 개의 감동적이며 사랑스럽고 말 그대로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아주 좋은 글의 성찬이 조그만 전화기 속으로 미어터질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그 글을 보내는 분들이 모..
복날이면복날 아침, 창밖으로 굵은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며칠간 이어진 선선한 날씨에 한동안 여름의 무더위를 잊고 있었지만, 곧 닥칠 찜통더위를 생각하면 잠시의 안도일 뿐이다. 에어컨을 마음껏 켤 수 없는 형편에서야 이 장마가 주는 한낱 시원함도 반가운 법. 남쪽 지방은 이미 삼십 도를 넘는 불볕더위로 고생 중이라니, 우리나라가 작다고는 해도 지역마다 겪는 날씨는 제각각이다. 그마저도 다음 주면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복더위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우리는 지금 내리는 이 비마저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밤새 내린 폭우는 약간 잦아들었지만, 아침까지도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밤샘 근무로 몸은 피곤하고 눈꺼풀이 무겁지만, 새벽녘에 마신 커피 덕분인지 머릿속은 맑다. 사무실 앞 해송의 솔잎 끝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