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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하늘은 청명한데, 그래도 바람이 분다 꽃샘추위가 절정이다. 세상을 삼킬 듯 매서운 바람이 쉴 새 없이 가르릉 거리며, 길가의 마른 낙엽들을 긁어 보아 하늘에 흩뿌려 희롱을 한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낙엽들은 어느새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웅얼대는데, 그 소리가 이제 막 세상에 나서려는 내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부모만의 기우가 아닐까 싶다. 열흘 남짓이면 공익근무가 해제되는 작은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이 꽃샘추위가 한창인 창밖의 풍경처럼 황량하다. 덩치만 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를 대하는 아이는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지난 2년간 옹골지게 이룬 것 없이 태평하게 세월만 흘려보냈다. 본인이야 앞날에 대한 고심을 안 했을까만 아비의 입장이라는 게 인지상정이라 하루빨리 세상의 무서움을 자각..
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 온기가 없어 얼른 보일러 조절기로 가보니 여지없이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또 어머니께서 꺼 놓으셨나 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며 보일러 전원을 꺼 놓으시는 게 요즘 어머니의 일과 중 하나입니다. 덕분에 집안에 온기가 남아나질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근할 때면 아내보다 먼저 나서서 배웅을 하고, 퇴근 무렵이면 대문 소리만 들려도 방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시던 어머니였는데, 요즘에는 미닫이문 여는 것도 귀찮으신지 문안인사를 드릴 때까지 이불을 덮고 눈만 빼꼼하니 내놓은 채 "으~응 왔어?" 라는 가벼운 인사말만 하시고는 T.V. 화면을 응시하며 가만히 누워계십니다. " 엄니~ 왜 보일러 꺼 놓고 그렇게 계세요 안 추워요..
술 한잔 마시면 나는 어제도 살고, 오늘도 살면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뭉그적거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간절한 마음은 오랜 시절 마누라에게 잘못해 왔던 사실에 대한 참회이고, 또! 부끄러움의 표현인 것을 알고 있구나 허허.. 술 한잔 마시는 것도 당신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만 원짜리 한 장 쓰는 것도 당신에게 결재를 득해야 한다는 작금의 현실이 꿈과 같은데. 내가 씨 뿌려 세상 구경하는 두 아이들은 아직까지는 아무런 세상의 걸림돌도 없이 하루의 낮과 밤을 즐기면서 당당하게 자기가 세상의 꼭대기~ 이른바 "Top of the world"인 줄 알며 스스로가 그냥 세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며 살아오고 있구나. 오늘까지! 나는 내가 아닌 세상을 스치며 흘렸다. 내 아이들도 당연히..
어머니의 입원 그렇게 술을 마시지 말라 해도 황소 심줄 같은 고집으로 약주를 드시더니 기어코 병원신세를 지는 불상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전처럼 가벼운 일과성의 입원이 아닌 듯싶다. 지속적인 음주로 간 기능이 약화되었고, 기력까지 쇠하여 며칠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여동생의 말이 귓전을 흐른다. 아버지 생전에는 술 한잔 안 드시더니 몇 년 전부터 입에 대기 시작하였는데 발그레 홍조 띤 모습이 보기 좋아 그러려니 했지만 얼마 전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불콰한 모습에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단내를 풀풀 풍기며 "나! 술 안 마셨어"를 입에 달고 대문을 들어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움이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 도가 지나쳐 술에 취해 동네에 쓰러져 계신 어머니를 아이들과 집..
이번 추석 어제는 추석이었다. 혹자는 5일을 쉬느니, 3일밖에 안 쉬어서 불편하다느니 말들을 하지만, 결국은 예년의 추석과 마찬가지로 경기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들의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빼곡하고 텔레비전에서는 특집 방송으로 요란하다. 오늘은 돌아오는 차량들의 행렬로 또다시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을 것이 뻔하지만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불편함이다. 명절이면 저 귀성객의 틈새에 끼어 정체의 짜증스러움도 맛보고 그 짜증 속에 녹아있는 고향을 찾는 맛을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 본다. 하지만 나의 고향은 화성 성곽에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고향의 흔적 찾기는 묘연하고, 아내와 나는 둘 다 맏이요 차로 10분 거리가 처갓집이면서 성묫길 역시 3시간이면 양가 모두..
5월의 소회(所懷) 오늘은 24절기 중 일곱 번째인 ⽴夏다 곡우와 소만 사이에 있는 입하는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로 곡우 때 마련한 묘판의 모도 잘 자라고 있어 농사일은 더 바쁘고 파릇한 신록이 온 누리를 뒤덮는다. 절기는 변함없이 매년 돌아오는데, 올해는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로 인해 다소 늦게 찾아온 완연한 봄을 이제 막 느끼기 시작한다. 창가에는 때마침 푸른 창공을 유유히 날아가는 백로 한 마리가 이 봄에 여유로움을 선물한다. 영종에는 매의 일종인 말똥가리의 우아한 날개짓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아름다운 철새 후투티가 바닷가에서 귀엽게 노니는 모습과 두루미와 천연기념물 보호조인 노랑부리백로가 논두렁에서 유유자적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산비둘기의 화려함과 해오라기들의 종종거림도 함께 볼..